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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브런치 통계 페이지를 보다가 이런 유입 키워드를 보고 그 자리에 벼락을 맞듯 굳어지고 말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드라마 하나가 있다, 얼굴 예쁜 배우의 대명사쯤으로 통하는 한 여배우의 오랜만의 컴백작이었다.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여주인공의 혼령이 뒤에 남은 남편과 아이, 가족들을 지켜보는 내용의 그 드라마는, 매회 본편이 끝나고 나면 1분 정도 분량의 짤막한 에피소드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편엔가, 늘 무덤덤하고 좋다 궂다 말도 없던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버린 딸의 영전에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장면만을 아무런 편집 없는 롱 테이크로 수 분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에필로그를 보고 절감했다. 남편 죽은 여자는 과부라고 하고 아내 죽은 남자는 홀아비라고 하며 부모가 죽은 아이는 고아라고 하지만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그 망극한 슬픔을 헤아릴 길이 없어 부르는 이름조차 없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늘 생각한다. 그나마 그가 떠난 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어서 고맙다고.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더없이 힘들고 끔찍하고 아프게 떠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워낙에 이별이 많은 세상이라, 나와도 그나마까지 같이 있지 못하고 혼자 이 외로운 세상을 살다가 혼자 떠난 것이 아니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늘 생각한다. 내가 그의 어머니가 아니어서 다행이고, 그가 내 아들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만약에 그랬더라면, 나는 과연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늘 한다.
그가 쉬고 있는 봉안당에 갔다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의 자리 사방으로 인사를 한 번씩 하고 나온다. 최대한 허리를 깊숙이 수그려서 90도 가까이, 최대한 공손하게 하는 인사다. 별 뜻은 없고, 그저 저희 신랑 잘 좀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몇 칸 안 되는 봉안당 그의 자리 근처에조차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 자리가 있다. 가슴이 아파 차마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군대에 갔다가 슬픈 일을 당하게 된 것이라면 떠난 분의 나이는 기껏해야 20대 초반에 불과할 테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가 그렇게 잃은 그 댁의 부모님은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셨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실감과 외로움 따위는 그래도 차마 댈 것이 아닌 듯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 검색어를 통해 이 브런치에 다녀가신 분에게 정확히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망망대해 같은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저런 가슴이 미어지는 문장을 써넣는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렇게 찾아오신 이 브런치에서 그분은 어떤 글의 어떤 문장을 읽고 나가셨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조금 뜨끔해지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2024년 2월 27일 저 검색어를 통해 이 브런치에 다녀가신 분이 다시 이 글을 보시게 될 기회가 생기신다면 망극하신 슬픔에 차마 여쭐 말씀을 찾기 어렵다는 말씀을 조심스레 드려 본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떠나가신 그분은 최소한 이 그악스럽고 풍진 세상보다는 아름답고 행복한 곳에서 편하게 쉬고 계실 것이라는 말씀도. 저 또한 저의 사람이 그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