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그가 오늘 떠났더라면

-94

by 문득

해의 숫자를 4로 나누어서 나머지가 없이 딱 떨어지는 해는 2월이 29일까지 있다. 그 별 것 아닌 사실도 어릴 때는 꽤나 신기하게 여겨졌었던 것 같다.


1년은 365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인간이 우리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붙인 숫자일 뿐이다. 지구의 입장에서는 하는 짓이 딱히 예쁘지도 않은 인간이 편하라고 365일에 정확히 맞춰 태양의 주위를 돌아줄 하등의 이유가 없는 셈이며, 그래서인지 사실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일 하고도 다섯 시간 30분쯤이 남는다고 한다. 이렇게 남는 우수리 같은 시간들을 제때제때 정산해 주지 않으면 수천 년 후에는 남반구마냥 여름이 겨울이 되고 겨울이 여름이 되는 때가 온다고 하니 우리 편하자고 거 이왕 도는 것 한 다섯 시간 정도만 빨리 돌아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할 수 없는 인간 쪽에서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2월 29일은 대략 그런 이유에서 생겨난다고, 나는 일단 그렇게 알고 있긴 하다.


처음 2월 29일이라는 날짜를 알게 됐을 때 대번 드는 생각은 그거였다. 그날 생일인 사람은 어떡하냐고. 그런 애들은 4년에 한 번씩밖에 케이크를 먹을 수 없는 거냐고.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보통 2월 29일이 생일인 사람들은 그냥 2월 28일로 생일을 당겨서 친다고 들은 것 같다. 그래야 할 것 같기는 하다. 4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니까.


그리고 오늘은 그가 떠난 후로 처음 맞는 2월 29일이기도 하다.


불쑥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가 그런 식으로 훌쩍 떠나간 날이 2월 29일이었으면, 나 또한 4년에 한 번씩 밖에 그가 떠나간 날을 양력으로는 챙길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물론 나 역시도 만일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2월 28일로 당겨서 날짜를 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뭔가 언니나 동생과 비슷한 날짜에 생일이 들어 진짜 제 생일도 아닌 날짜에 생일밥을 먹고는 어딘가 불퉁해 있던 어린 시절의 친구 같은 찜찜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월 28일인지 29일인지, 심지어는 3월 1일인지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다시 한번 그에게 고맙다. 어제 쓴 글 말마따나 자신의 선택으로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어서 고맙고, 연고도 없는 곳이 아닌 내 곁에서 조용히 떠나 줘서 고맙고, 너무 아프고 무섭게 떠나지 않아 줘서 고맙고, 아울러 내 아들이 아니어서 고마운 것에 더해서, 4년에 한 번씩밖에 돌아오지 않는 오늘 같은 날을 피해서 떠나 준 것도 고맙다.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 사이에 낀 듯한 오늘 같은 날 마치 내 흔적 따위는 터럭만큼도 남겨두기 싫다는 듯이 떠나지 않아 줘서 고맙다. 그가 떠난 4월 초는 이제 완연한 봄날이라 사방엔 기뻐할 수도 없는 봄꽃이 만발해 나를 더 슬프게 할 테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여름이면 날이 좋아 슬플 테고 가을이면 단풍이 떨어져 슬플 테고 겨울이면 눈이 내려 슬플 테니 내 슬픔이야 어쩔 수 없다손 치고, 너무 무정하게는 떠나 주지 않아서 고맙다.


이젠 참,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되는 걸 보니 그가 떠난 지도 아주 약간이나마 시간이 흘렀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먼저세상떠난아이가너무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