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무침 대신 비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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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고기, 특히 삼겹살 구워 먹을 때 따라 나오는 파무침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제 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입이 짧고 특히나 채소 종류는 질색을 하다시피 싫어하는 인간이지만 이런 나조차도 고기 먹을 때 파무침은 없어서 못 먹는데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고기를 사다 집에서 구워 먹었다. 대개 삼겹살 절반에 목살이 절반 정도의 비율이었다. 고기를 구워 먹는 날이면 그는 채칼도 아닌 부엌칼로 파채를 직접 썰어서, 거기다 이런저런 양념을 넣고 상추도 좀 뜯어 넣어서 파무침을 만들었고 그 파무침은 항상 고기보다 조금 일찍 바닥나서 아 이왕 만드는 김에 조금 더 만들걸 하는 후회를 하곤 했다. 그 파무침을 어떤 양념을 넣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것까지는 잘 모른다. 안다고 한들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그가 떠나고 나서 더 이상 먹지 않게(혹은 못하게) 된 음식 중에 예의 파무침도 있다. 장을 볼 때면 그때그때 세일하는 고기를 조금 사다가 조금씩 구워 먹곤 하는 편이지만 그가 해주던 그 파무침만은 도저히 재현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뒷손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맹탕 구운 고기만 홀랑 집어먹는 것도 싸지도 않은 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닌지라 나는 내 나름대로 그의 파무침을 대신할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비빔면과 같이 먹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빔면의 매콤한 양념이 나름 파무침 비슷한 역할을 해주기도 하거니와 굳이 밥을 따로 하지 않아도 한 끼 때우는 용으로는 제법 쓸만한 식사가 된다. 비빔면을 비빌 때 양념만 넣지 않고 참기름과 설탕을 조금 넣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매실청이 있으면 더욱 좋고.


그저께는 간만에 장을 보다가 뜻하지 않은 항정살을 싸게 파는 것을 보고 불문곡직 샀다. 음식 맛 잘 모르고, 그 와중에 고기 맛 같은 건 더더욱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돼지고기 부위 중에서 항정살을 제일 좋아해서 이런 거 보면 맛볼 줄 모른다는 거 죄다 거짓말이고 그냥 까탈을 부리기가 싫은 거겠지, 하고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점심에는 실로 오랜만에, 구운 항정살에 비빔면을 곁들여 한 끼를 맛있게 잘 먹고 치웠다.


비빔면 하나 끓이는 데 들이는 수고는 파무침을 만드는 수고에는 감히 비길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소위 가격 대 성능비로만 따진다면 비빔면 쪽이 파무침에 비해 월등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비빔면에는 파무침의 그 아삭아삭하고 상큼한 맛이 없다. 그래서 매번, 다음번 고기를 먹을 때는 귀찮더라도 파무침 비슷한 걸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번번이 나는 그 다짐을 잊어버리고 또 맹탕 끓인 비빔면으로 둘둘 만 고기 한 점을 집어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정말로 기억을 못하는 건지, 귀차니즘을 이기지 못하는 건지, 둘 중 어느 쪽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봤자 그가 만들어주던 그 파무침 맛은 안 날게 분명하니까 일부러 기억나지 않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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