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올리브유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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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렇게 훌쩍 떠나기 얼마 전쯤에, 그는 마침 마트에서 가격이 싼 걸로도 모자라 원 플러스 원 행사씩이나 하는 올리브유를 발견했다며 몹시 기뻐했었다. 물론 그래놓고 그렇게 산 올리브유를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올리브유보다 훨씬 맛있는 것이 잔뜩 있는 곳으로 혼자 가 버렸고, 그래서 남은 올리브유를 먹어치우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었다. 그렇게 남은 올리브유 한 병 반 이상을 허위허위 먹어치우면서 나는 그런 글을 브런치에 썼었다. 이제 이 올리브유를 다 먹고 나면 내가 과연 나 혼자 먹자고 또 올리브유를 살 일이 생길까. 정답. 생긴다. 그것도 아주 근시일 내에 생긴다.


내가 저 별 것도 아닌 올리브유를 가지고 청승맞은 글을 쓴 것이 정확히 작년 4월 29일이었다. 그러니 아직 1년은커녕 한 10개월이나 겨우 된 셈인데, 그 사이 나는 새로 산 올리브유 한 병을 아주 깨끗이 먹어 없앴다. 그나마 이번 올리브유는 내가 병원에 서너 달 정도를 드러누워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 병 다 먹어 없애는 데 반년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핑계를 대자면 몇 가지 있다. 찬밥으로 해 먹기 좋은 것 중에 리조또가 있고, 나는 이 리조또를 꽤 자주 해 먹는 편이기 때문에 그때 대개 올리브유를 쓰게 된다. 그리고 가끔 식단이 뜨거나 이것도 저것도 먹기 싫을 때 해 먹는 파스타에도 올리브유는 들어간다. 아니, 이런 건 그냥 다 핑계다.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는 향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고, 대개 양파와 버섯, 베이컨이나 햄 등을 넣어서 볶다가 화이트 와인을 조금 둘러주면 나는 그 특유의 향이 있다. 그 향은 그가 파스타를 할 때 자주 나던 향이고(애초에 이런 식으로 파스타 만드는 것을 나는 그의 어깨너머로 배웠으니까 말이다) 나는 잠시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잊고 행복해진다. 어디서 들은 말로 후각은 뇌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감각이어서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용이 제일 직접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런 걸 보면 정말로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매번 이런 식이다. 나 혼자 먹겠다고 이걸 또 사겠나 하던 것들을, 나는 또 사는 것도 모자라 두 번 세 번 거듭거듭 사다 쟁이며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굴소스가 그랬고 화이트와인이 그랬고 이젠 올리브유도 그 대열에 이름을 올릴 참이다. 객쩍고 머쓱해서 이제 다시는 그런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결국 한 순간뿐이라 밥만 잘 먹더라는 그 노래 가사가 내 얘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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