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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r 07. 2024

지금은 없어서 못 먹습니다

-101

내 고향은 부산이다. 그래서 나는 해산물 귀하고 아쉬운 줄을 모르고 자랐다. 비리고, 대개의 경우 손 버리지 않고 깔끔 떨면서 먹기에 적절하지 않은 해산물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산에서 사는 23년 동안 나는 회를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내가 회를 배운 것은 오히려 해산물 귀한 윗동네에 올라오고 난 후였다. 윗동네에 오니 회는 한우에 버금갈 만큼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고, 그러니 회식이든 어디든 회를 먹으러 갔을 때 먹을 줄 모른다고 뾰로통하게 물러앉아 있어 봤자 그건 그냥 내 손해였다. 그래서 뒤늦게 회 먹는 걸 배웠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그게 무슨 경상도 말로 '디비 쪼는' 짓이냐며 한참 웃으셨다.


나는 계피를 싫어했다. 그 톡 쏘는 맛도 싫었고 독하기까지 한 향도 싫었다. 그래서 커피라고 생겨먹은 것은 뭐든 다 좋아하면서도 카푸치노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다 옛날 말이다. 요즘 나는 시나몬 향이 나는 빵이며 과자를 아주 즐겨 먹고, 그것도 모자라 숫제 계피를 푹푹 달여 끓이는 수정과는 그야말로 없어서 못 먹는다. 가끔 한정식집에 갈 일이 생겨 후식으로 나오는 수정과가 참 그렇게 깔끔하고 향긋하고 맛있을 수가 없어서, 이 좋은 걸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피해 다녔는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왜 돈 주고 사 먹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음식 중에 비지찌개가 있다. 아니, 두부로 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그 시큼털털한 비지찌개를 굳이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거냐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비지찌개를 좋아하던 그가 어쩌다 한 번식 비지찌개를 하는 날이면 대놓고 마뜩잖은 기색을 내며 깨작깨작, 그래도 음식 한 사람의 성의가 있으니 너무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쓰며 겨우 밥 한 그릇을 비웠다. 그러나 그가 떠나기 얼마 전쯤엔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먹은 지 오래됐는데 비지찌개나 해 먹을까 하는 말을 내가 먼저 꺼내게끔까지 되었었다.


어제 올린 글이 자그마치 10만 뷰를 찍었다. 댓글도 자그마치 여덟 개나 달렸다. 처음엔 그냥 가끔 잊을만하면 오는 만 뷰 알림인가 보다 하고 무심히 넘기려다가 어딘가 숫자의 길이가 늘 보던 것과 달라서 찬찬히 세어 보니 만 뷰가 아니라 10만 뷰였다. 겁이 덜컥 났다. 어제 올린 글에 뭔가 내가 생각지 못한 '잘못된'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닌가. 제목을 너무 자극적으로 달았나.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크래커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시기에 언짢을만한 제목이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해명 차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요즘은, 그 크래커 없어서 못 먹는다고. 회가, 수정과가, 비지찌개가, 나물이 그러하듯이. 어리고 철없을 시절 뭘 잘 몰라서 가진 좁은 소견이었을 뿐이라고. 그가 조금 더 엄격한 사람이었다면 안 그랬겠지만, 내 곁에 20년을 있다가 떠나간 그 사람은 뭐든지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던 사람이라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내게 굳이 먹이려 들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라고. 어제는 달이 바뀐 인사도 할 겸 그의 봉안당에 다녀왔다. 아마도 내가 없는 곳에서, 더 이상 내 눈치 따위 보지 말고 나 때문에 못 던 것들 실컷 먹으면서 잘 지내고 있었으면 싶다. 이제 와서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그런 것뿐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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