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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r 29. 2024

정주행

-123

브런치에 쓴 글이 어느덧 600편을 넘었다. 물론 그 600편의 글을 내가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느냐 하면 유감스럽게도 별로 그렇지는 못하다. 요즘 부쩍 구독자 수가 늘었고, 그래서 처음 이 브런치에 오신 분들이 여기는 도대체 뭘 하는 브런치인가를 이것저것 둘러보시다가 지나간 글들에 라이킷을 남겨주실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제목들 중에는 내가 이런 글도 썼었나 하는 낯선 제목들도 있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도 이거 도대체 무슨 글인가 싶어 제목을 눌러 들어갔다가 절반쯤은 아, 이 글이었구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 절반쯤은 아직도 글의 행간 여기저기 남아있는 당시의 상실감과 막막함 때문에 혼자 지레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 브런치의 초창기 글들은 사실은 글을 쓴 나조차도 다시 읽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 대의 나는 그야말로 누가 팔꿈치로 옆구리만 툭 쳐도 울어버릴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딱히 잘 살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위험했고, 위태로웠다. 그 시기를 용케 잘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자 산다는 것의 가장 위험한 점 중의 하나는 마음이 위험한 곳으로 내달려갈 때 나를 붙잡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내게도 그런 많은 순간들이 있었구나 하는 것이 지나간 예전 글들을 읽다 보면 눈에 보인다. 그냥 지난 2년의 시간은 다른 것 아무것도 필요 없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장하다고 나 스스로를 칭찬해 줘도 되지 않을까. 지나간 글들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2주기를 목전에 둔 지금, 내 삶은 아직도 원상복구는 되지 않았다. 아니, 이제 '그가 있던 시절'로의 원상복구는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 삶의 전제 자체가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2022년 4월 이전의 삶으로는, 그때 살던 방식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제부터 나는 나 혼자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하나하나 찾아가야 하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는 썩 만족스럽다고만은 하기 힘들고 때로는 지극히 불만스럽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이젠 그렇게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가 그립고 보고 싶어도 그가 있던 시절과 똑같은 양의 밥을 매일매일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입을 사람도 없는 남자용 겨울옷을 사다가 옷장 속에 재어놓을 수도 없으니까. 내 삶은 달라졌고 이젠 그 삶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끔은 서글플지라도.


얼마 전부터 간간히 댓글을 남겨주시는 어느 독자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반년 사이에 어머니와 동생을 연거푸 떠나보내고 공허함에 시달리던 중에 이 브런치를 발견하셨다고. 그래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이 사람은 어떻게 그 상처를 이겨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구독하게 되었다고. 그 독자님께, 그리고 2년 전 느닷없이 닥친 상실에 몸부림치고 있던 그때의 나에게도 전하고 싶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빨리 괜찮아지려고 억지로 무리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슬프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그 모든 것을 싸안고 흘러간다고. 물론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백퍼센터 괜찮아진 것은 아니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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