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Mar 28. 2024

875원까지는 아니더라도

-122

'875원 대파'라는 의문의 검색어를 SNS에서 봤다. 그러려니 했다. 그런 눈이 번쩍 뜨이는 할인 행사는 대개 셋 중 하나다. 아주 먼 곳에서 하거나, 물량이 턱없이 부족해서 나 같은 곰손으로서는 한 다리 낄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나, 미끼상품이거나.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파는 물건' 중에 내가 사는 데 성공한 것은 몇 년 전 강원도에서 감자 10킬로그램을 5천 원에서 판다고 해서 한바탕 난리가 났던 그때 딱 한 번뿐이다. 그래서 나는 뭐 또 보나 마나 그런 나와는 상관없는 행사들 중 하나겠지 생각하고 구태여 한 번 눌러보지도 않았다. 또 모를 일이다. 대파는 꼭 필요하긴 해도 그걸로 밥이 해결되는 식재료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적당히 나이브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건지도.


또 간만에 된장찌개나 좀 끓여놓고 한 일주일 편하게 밥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 끓이는 된장찌개니 앞다리 살이라도 좀 사 와서 듬뿍 넣어서, 그렇게 맛있게 끓이자고 마음을 먹고 마트에 갔다. 오늘은 정말로, 이것저것 그것 말고 다른 데는 눈도 돌리지 않고 나오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고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골라야 할 것들을 다 고르고 마지막으로 파나 한 단 살까 하고 파 매대 쪽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런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875원 대파는 저희 지점 행사상품이 아니오니 쇼핑에 착오 없으시기 바란다는. 아, 내가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띄엄띄엄 보는 사이 이 마트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이 천 원도 안 하는 가격에 대파 한 단 사보겠다고 수태 들이닥쳤었나 보구나. 그런 생각에 피식 웃었다.


그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사람이었지만 가끔 저런 것에 턱없이 쉽게 '낚일' 때가 있었다. 쇼핑몰 오픈 행사 같은 걸로 자주 하는 랜덤 박스라든가, 마트의 할인 행사로 선착순 백 명 한정으로 계란 한 판을 100원에 판다든가 하는 그런 것들에. 그러면 또 답지 않게 그런 것들을 잘 믿지 않는 나는 그거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물건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신경 끄라고, 답지 않게 딱 잘라 말하곤 했었다. 어쩌면 이번의 '875원 대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때의 남은 잔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가 있었더라면 그 한 단에 875원 한다는 대파는 어디 가서 뭘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 건지 지대한 호기심을 보였을 것이며, 나는 그런 그를 말리기 위해 그거 보나 마나 이런저런 조건이 붙어있거나 하루에 한 백 명 한정이라 새벽같이 가서 줄을 서야 하거나 뭔 수가 있을 거라고, 그냥 속 편하게 잊어버리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너는 다른 데는 안 그러면서 이런 일에는 이상하게 쿨하더라고, 그는 신기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게, 그곳에서는 그런 데 낚이는 당신을 말려줄 사람도 없을 텐데 이런 건수가 있을 때마다 낚이고 실망하기를 내내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어제 산 대파는 875원까진 아니어도 평소 때 가격에 비해 천 원 정도는 쌌다. 나는 일단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 또한 그랬기를 바란다. 괜히 875원짜리 대파에 낚이지 말고, 평소보다 천 원 싼 파값에 만족했기를. 내가 없더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은 고개를 숙여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