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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01. 2024

나는 이제

-126

작년 4월 1일엔 무슨 글을 썼나, 하고 지나간 브런치를 뒤져봤다. 아마 장국영이 죽은 이야기를 썼겠지. 그리고 그 생각은 얼추 맞았다. 글 하나가 통째로 다 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작년 4월 1일에 썼던 글은 그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었다. 아마 워낙에 충격적인 기억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사촌 오빠들이 보던 홍콩 영화 비디오 속에 등장하던 그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가 아는 한도의 모든 남자사람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하필이면 만우절날 하필이면 투신자살이라니. 마치 그 일생 자체가 실화가 아닌 픽션이어서, 누군가가 이렇게 끝을 맺어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겠지 하는 생각에서 일부러 짜 놓은 결말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목숨이 덧없다는 생각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준 사건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일이 마치 거대한 복선의 일부이기라도 하다는 듯, 그로부터 19년 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어느 봄날 나는 내가 반평생을 두고 사랑하던 사람을 일조일석에 잃었으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별로 실감을 하지 못했었나 보다. 벌써 며칠째 브런치에 그의 이야기를 쓰고, 그가 떠나간 날 근방의 청승맞은 이야기들을 쓰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남의 일처럼 느끼고 있었나 보다. 날이 바뀌고 4월로 넘어간 달력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 왔다. 지나간 2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가는 듯한 멀미 비슷한 어지럼증이 일었다. 그 끔찍한 금요일 오전 11시경에서 벌서 2년이나 흘러갔다는 사실이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디선가 읽은 말이지만 메모를 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모해 놓고 잊어버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그 역설에 감탄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씩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그렇게나 고통스럽고 원망스럽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은 굳이 그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되는 만큼, 흐려지면 흐려지는 대로, 정 사라지지 않는 부분은 그것대로 가슴에 품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은 내 영혼 어느 한 구석에 단단히 엉켜있어서 억지로 잘라내려 들었다가는 나까지 같이 손상될지도 모르는, 그런 부분일 것이 분명하기에.


다행이다. 난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잊지 않았고 그의 얼굴도 잊지 않았다. 그가 그런 식으로 나를 속여놓고 이 세상의 어느 구석에서 몰래 살아가고 있는 걸 먼발치에서라도 보게 된다면, 그렇게라도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그를 잊지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는 어느 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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