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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08. 2024

다시, 그리고 벌써 1년

-133

작년 오늘은 어땠던지, 그런 걸 찾아본다. 이럴 땐 하루도 빼먹지 않고 브런치를 쓴 것이 참 잘했다 여겨진다. 1년 전 오늘 나는 기특하게도 일곱 시 반에 일어나 내가 할 일을 전부 마치고 여덟 시 반에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리고 아마 봉안당으로 그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미 내 곁을 떠나고도 몇 시간이나 지난 후였던 11 시쯤에는 아마 봉안당 그의 사진 앞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굳이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 그것 하나는 참 좋은 일이다.


거기서부터도 또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를 보내고 맞는 두 번째의 봄이다. 뭔가가 별로 변한 게 없는 듯하면서도 또 조금씩은 변한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집안이 조용한 걸 견디지 못해서 보든 안 보든 무조건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지냈다. 그런 주제에 슬픈 프로그램도 싫었고 눈치 없이 너무 방방 뜨는 프로그램도 싫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틀어놓을 프로그램을 물색하느라 꽤나 골머리를 앓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안이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텔레비전을 꺼 놓고,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나 보고 있다. 이제 이 집안에 가득한 침묵이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가 떠나고 한동안 늦잠을 자지 못했다. 잘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늦게까지 이불속에 파묻혀 미적거리고 싶은 욕구가 별로 들지 않아 일곱 시 조금 넘으면 미련 없이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히 잠도 빨리 들었었다. 요즘은 그러던 리듬이 서서히 박살 나기 시작해서, 새벽 두 시나 되어서야 잠들고 덕분에 기상 시간은 여덟 시 전후, 새벽에 깨서 좀 뒤척거리기하도 한 날은 아홉 시까지 늘어지기도 한다. 알 수 없는 허전함에 자리에 오래 누워 있지 못하던 것이 고작 1년 남짓 갔구나 싶으니 나의 무딤에 스스로 좀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핸드폰의 날씨 어플에 따르면 오늘 낮에는 23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며칠 전 투표를 하느라 나가 보았을 때는 봄꽃들이 슬금슬금 피기 시작하기는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확 피었다는 느낌까지는 없었지만 오늘은 아마 며칠 전과는 또 다를 것이다. 이맘때의 봄꽃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니까. 그의 봉안당이 있는 구릉에도 아마 많은 꽃들이 피었을 것이다. 새삼 그가 본인의 양력 생일 3일 후에, 음력 생일을 닷새 남겨놓고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그러고 보니 그가 떠나고 난 후 허한 마음을 다잡지 못해 몇 군데 본 점사에서 도저히 마음이 정리되지 않거든 물건 정리는 좀 천천히 해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1년은 넘기지 말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1년은 무슨, 2년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그의 물건을 거의 버리지 못했다. 내년 이맘때쯤까지는 좀 정리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많이 울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할 수 있으면 하고, 도저히 못하겠으면 하지 말자고. 그래서 1년이 지난 내년 이맘때에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냥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당신도 받아들이라고 강짜나 부려볼 요량이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그렇게 해줄 것 같다. 욕본다. 그런 한 마디와 함께.


그래도 오늘이 그가 떠난 금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이라 다행이라고, 그런 마음 약한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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