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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07. 2024

눈에 띌 때 드세요

-132

사전투표가 금, 토 양일에 걸쳐 진행된다기에 어제는 투표를 하러 갔다. 원래라면 나갔다 올 일이 있었던 금요일에 그것까지도 해버리고 들어오는 것이 집순이다운 행동패턴이었겠지만 어째 영 동선이 맞지 않아 투표까지 해치우고 오는 것은 무리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전 투표소는 15분쯤 걸어가야 하는 행정복지센터이고, 투표일 당일에 투표할 수 있는 관할 투표소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지라 약간 갈등했지만 그냥 이왕 할 거라면 빨리 투표하고 그날은 선거 방송이나 지켜보자고,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예의 행정복지센터는 내가 요즘 맛을 들인 그 크래커 및 기타 등등의 여러가지를 사러 자주 가는 동네 마트에서 5분쯤 더 가는 곳에 있다. 내가 걸어 다니는 동선은 대개 그 마트까지만이다. 거기를 넘어서면 돌아오는 길까지 따졌을 때 좀 걷기가 버거워져 버스를 타기 때문에 거기까지 걸어간 것은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최소한 그가 떠난 직후, 반쯤 넋을 놓고 지내던 그때 이후로는 처음인 듯싶었다.


요즘은 미리 준비해 간 그림에 기표를 해서 가지고 나와 그 그림을 인증하는 투표 인증 방식도 유행한다는 모양이지만 괜히 그런 짓을 했다가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인증은 생략했다. 투표를 하고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오던 중에, 나는 아주 예전부터 봐놓고 있었던 닭갈비집이 문을 닫고 다른 가게로 바뀌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그 집은 근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태백식 물닭갈비를 한다는 집이었다. 물닭갈비면 국물이 있는 닭갈비라는 말일 텐데 닭도리탕이랑 무슨 차이가 있을까를 두고 그와 나는 몇 번 꽤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조치원에 가면 닭떡볶이라는 것을 파는데, 그것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인가 하는 얘기도 했었다. 그렇게 궁금하니 한 번 가서 사 먹어보자는 말만 몇 번 하다가 그는 훌쩍 내 곁을 떠나버렸고 가게도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만 그 자리에 그렇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말도 처음 듣던 태백식 물닭갈비라는 것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온갖 배달음식들이 성행하면서 이젠 꽤 유명해졌다. 자세히 검색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굳이 먹고자 한다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가서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밀키트나 택배 주문 같은 것을 통해서 결국 그와 함께 해답을 내리지 못한 '닭도리탕과의 차이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냉동실에는 일전에 사다 먹은 닭갈비 1인분이 고스란히 냉동되어 있고 전화 한 통이면 닭도리탕 정도는 충분히 시켜 먹을 수 있다. 혼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그 태백식 물닭갈비를 먹어볼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아마 순번이 아주 뒤일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너무 오래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적당한 시기에 꼭 드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음식도, 그 음식을 파는 가게도, 그 음식을 먹고 싶은 식욕도, 같이 그 음식을 먹어줄 줄 알았던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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