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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06. 2024

글쎄 그런 게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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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크래커 글 이후로 이 한적한 브런치에는 방문자 수도 좀 많아진 느낌이고 글에 찍히는 라이킷 수도 많이 늘었다. 그렇게 알림이 오는 글들 중에는 더러 나조차도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생경한 글도 있다. 그래서 그런 글들을 눌러서 읽어보다가 뒤늦게 오타를 발견하고 슬그머니 고쳐 놓는 일이 자주 있다.


요즘 글을 쓸 때 오타가 많이 늘었다. 브런치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내 눈이 나빠진 탓이 클 것이다. 요즘은 심각하게 안경을 하나 맞춰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안경까지 써버리면 정말 뭔가가 돌이킬 수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든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하고 있는 중이다. 둘째로는, 이건 조금 핑계인 것 같긴 한데 사용하는 브라우저의 기본 폰트 자체가 데스크탑 화면에서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 요즘 추세에 발맞추어 핸드폰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이랄까. 여튼 그래서 어디든 글을 써놓고 올리기 전에는 맞춤법 검사가 필수다. 물론 맞춤법 검사로 오타를 백 퍼센트 잡아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걸러지니까.


어제도 그의 양력 생일에 관한 다분히 감상적인 글 하나를 써놓고 맞춤법 검사를 돌렸다. 대번에 처음으로 잡힌 단어가 문제의 '크림카레우동'이었다. 그런데 브런치가 추천하는 대체어가 '크림카레가락국수'여서 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아니, 크림카레가락국수라니 브런치야. 대충만 봐도 크림카레우동과 크림카레가락국수는 같은 음식으로는 생각되지 않지 않냐고, 나는 짐짓 심각한 글 앞에서 그렇게 한참을 소리 죽여 웃었다. 그게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에 더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뭐라고 하든 '크림카레우동'이지 '크림카레가락국수'는 아닌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나는 몇 군데나 빨간 줄이 그인 '크림카레우동'을 '크림카레가락국수'로 바꾸라는 브런치의 맞춤법 검사 툴의 제안을 전부 거부하고 글을 발행했다.


사실 이런 예가 크림카레우동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요 며칠 몇 번이나 브런치에 오르내린 저 노랗고 예쁜 꽃의 이름은 브런치의 말을 빌자면 '프리지어'지 '프리지아'가 아니라고 한다. 이것 또한 마찬가지다. 국립국어원의 외국어 표기법에 의거하면 '프리지어'가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리지어'라는 꽃은 왠지 여리여리하지도 않을 것 같고 연노란 빛도 아닐 것 같고 가늘고 날씬한 줄기를 갖고 있지도 않을 것 같다. 아니, 이런 말은 다 핑계고 그냥 내가 아는 그 꽃은 '프리지아'지 '프리지어'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 맞춤법 검사 툴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프리지아'라는 말을 그냥 그대로 둔 채로 글을 발행했다.


이럴 거면 맞춤법 검사 같은 건 왜 하냐고,  맞춤법 검사기 입장에서는 그렇게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이해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나는 '크림카레가락국수'나 '프리지어'라는 단어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너 그런 식으로 자꾸 남의 글에 훈수 둘 거면 '놀라보게' 같은 정체불명의 단어나 좀 제대로 잡아내고 난 후에 두라고, 그렇게 한 마디 해 주고 싶다. 맞춤법 물론 중요하고 외국어 표기법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너는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글쎄 그런 게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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