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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05. 2024

잘 먹겠습니다, 크림카레우동

-130

그거 맛있을까, 하고 생각했다가 막상 먹어보고 의외로 맛있어서 놀란 음식이 몇 가지가 있다. 요즘은 꽤나 여기저기서 많이 하는 크림카레우동도 그중 하나다. 카레에 생크림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괴식이냐고 생각했지만 워낙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맛있다고 하는 참에 눈 딱 감고 한 번 사 먹어봤다가 당당히 최애메뉴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좀 걸쭉하게 끓인 카레에 우동면을 말고 그 위에 생크림이나 얹으면 되지 않나 싶은 크림카레우동은, 그러나 집에서 만들기에는 매우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음식이다. 일단 감자를 갊아 으깨서 거기다 생크림과 우유를 넣고 갈아주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러고 난 후에 베이컨과 이런저런 야채를 볶아서 물을 붓고 카레를 끓인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나중에 크림을 올릴 것을 생각해 카레의 간이 좀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끓여진 카레에 따로 삶은 우동 사리를 넣고 그 위로 미리 만들어놓은 감자크림을 얹으면 모 유명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 같은 크림카레우동이 되긴 한다. 이 문단의 마무리가 '된다'가 아니라 '되긴 한다'인 것은, 그렇게 만든 크림카레우동이 그의 평가를 빌자면 여러 가지로 가성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만드느라 애는 애대로 쓰는데 막상 만들어보면 사 먹는 것 같은 그런 맛은 안 난다는 게 그의 평이었다. 그래서 혼자 갖은 애를 써 가며 크림카레우동을 만들어줘 놓고도 그는 늘 시무룩했다. 내 입엔 그게 그거고, 심지어는 이게 더 맛있는데 왜 그러냐고, 나는 그런 그에게 항상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대개 진심이었다.


오늘은 그의 양력 생일이다. 사실 그가 내 곁에 있을 때도 양력 생일을 굳이 챙겨 먹지는 않았으니 오늘은 그냥 4월의 어느 평범한 날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그런 식으로 내 곁을 떠나간 후로 그의 흔적이 묻은 날은 그게 뭐든 그 핑계를 대고 봉안당에 찾아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써 놓고 봉안당에 다녀올 생각이다. 그를 만나고 난 후엔 오후에 미팅 한 건이 잡혀 있고, 그 핑계를 대고 나는 오랜만에 크림카레우동을 맛있게 하는 그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서라도 크림카레우동을 먹고 올 예정이다. 원래라면 그와 같이 먹었겠지만 그가 여기 없으니 그의 몫까지 내가 대신 먹는다는 뻔뻔스러운 핑계를 대고. 내 생일이 아닌 그의 생일인데 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느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는 원래도 자기 생일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곤 했다는 말로 변명을 삼아 볼 예정이다.


이번 주에는 그의 양력 생일이 있고 다음 주에는 그가 떠나간 날이 있고 그다음 주에는 그의 2주기 제사가 있고 그다음 주에는 그의 음력 생일이 있다. 이래서 이번 4월은 매주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가야 할 것 같다. 옆에 있을 때 좀 그렇게 하지 그랬냐는 타박이 들려오는 것도 같다. 그러게. 미리 귀띔 좀 해 주지 그랬냐고 이젠 우는 대신 그렇게 받아쳐 줄 작정이다. 크림카레우동 같은 건, 영영 같이 먹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먹는 버릇 따위나 들여놓고 도망갔냐는 지청구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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