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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2. 2024

헌화대의 법칙

-177

봉안당에 가족을 모셔놓은 다른 분들은 봉안당에 보통 얼마 만에 가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 정도면 꽤 뻔질나게 가는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일단 달이 바뀌면 무조건 한 번 가고, 생일이나 우리끼리 챙기던 기념일이나 설 추석 같은 날에는 또 무조건 간다. 그리고 간지 좀 오래됐다 싶어도 간다. 그래서 그의 양력 음력 생일과 2주기가 모두 몰려 있었던 지난 4월처럼 일주일에 한 번 꼴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직원분들과는 대부분 안면을 텄다. 작년에 급작스러운 입원으로 한 서너 달 본의 아니게 발을 끊었을 때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다들 걱정하셨더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집에만 있었더니 바깥바람도 좀 쐬고 싶기도 하고 봉안당에 다녀온 지도 한 2주쯤은 지난 것 같아서 어제도 아침에 할 일을 대충 마무리해 놓고 집을 나섰다. 봉안당에 들르면 나는 안내데스크에서 6천 원 정도 하는 작은 오아시스폼 화분을 산다. 그리고 왔다는 생색내기 용으로 그의 자리 앞에 갖다 놓는다. 봉안당 앞에 꽃을 두기 위해서는 투명 아크릴판으로 된 헌화대를 달아야 하는데 그의 자리 같은 경우는 내가 워낙 자주 들락거려서인지 거의 항상 헌화대가 달려 있는 편이다. 그래서 헌화대 달아달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고, 화본만 받아 들고 내려가려던 찰나였다. 면식 있는 직원분이 조용히 따라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셨다. 손에 헌화대가 들려 있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딱 치웠어요. 눈이 마주치자 못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직원 분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헌화대 놔뒀다가 치우면 그날 꼭 가족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이거 징크스예요. 저희끼리는 헌화대의 법칙 뭐 그런 말도 있어요 라고. 아 그러니까, 세차를 하면 꼭 비가 온다거나 흰 옷을 입고 나간 날 꼭 비빔냉면 같은 걸 먹을 일이 생긴다는, 그런 나름의 징크스인 모양이다.


떠나가신 모든 분들이 그 좁고 갑갑한 봉안당 안에 계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분들은 그런 곳에 있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나신 게 아닐 테니까. 그분들은 아마, 여기보단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에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내 가족들이 날 잊어버리는 건 역시나 좀 서운한 게 아닐까. 아무리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하는 법이라지만 잊고 지내는 것 같은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슬그머니 심통이 나서 오는 사람도 없는데 저거 치워버리라는 식으로 직원분들을 총대질하는 게 아닐까. 가족끼리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정색하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적당히 상대가 치댈 수 있을 만큼만 '삐지'듯이, 이때쯤 되면 오겠지 싶은 날에 맞춰서. 봉안당 직원 분들이 말하는 그 헌화대의 법칙이라는 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좀 웃었다.


집에 꽃 사다 놓는 것도 모자라서 올 때마다 꽃을 사들고 오니 이젠 꽃 질린다고, 그만 좀 사 오라고 그는 말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남들은 백 살까지 사느니 마느니 하는 이 좋은 세상에 내 사람이 그 반도 못 살고 먼저 간 것만도 억울한데 그 앞이 썰렁하게 비워져 있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는데 어쩌겠는가. 20년 동안 내 곁에서 살면서 못 받은 꽃 몰아서 받는다 생각하고 그냥 사줄 때 열심히 받으라고 말해주고 왔다. 언젠가, 나중에 내가 나이 먹고 거동이 불편해져서 지금처럼 자주 꽃도 못 갖다 놓게 되면 그때나 좀 봐달라고도.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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