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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1. 2024

스트레스가 처녀귀신을 만든다

-187

이 생활잡화점 같은 브런치에 때아닌 방문객을 불러들인 대표적인 글이 몇 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전의 그 치즈케이크 맛 크래커 글이긴 한데(이 크래커는 요즘도 사다 재놓고 먹고 있다) 그 외에도 밥솥에 1인분만 밥 하기 어렵다는 글이라거나 근처 군 공항의 소음보상금이 1년에 한 번씩 주는 건지 몰랐다는 글이라거나 하는 몇몇 떠오르는 글들이 있다. 그중에는 욕실 배수구에 엉킨 머리카락에 관한 글도 있다.


구경하러 갔던 마트에서 반값에 팔고 있는 헤어팩을 충동구매해 왔고 그 팩을 꾸준히 일주일에 두 번씩 사용했더니 머릿결이 확실히 좋아졌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머릿결이 좋아졌다는 건 머리를 빗을 때 덜 엉킨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샤워를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배수구에 엉키는 머리카락을 훔쳐내 보면 눈에 띄게 빠진 머리칼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일부러 배수구 구멍을 훑어낸 손이 머쓱할 만큼 거의 아무것도 걸려 나오지 않는 날도 있다. 자연히 욕실을 치울 때 배수구 구멍도 한결 깨끗해져서, 헤어팩이란 탈모에도 유용한 제품이구나 하고 감탄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요 며칠 새 사정이 좀 달라졌다. 이번주 들어 내내 샤워랄 하고 나서 배수구를 훔쳐 보면 한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는데 시커먼 머리칼이 제법 수북하게 엉겨 있다. 내가 머리 감는 방법을 바꿨을 리도 없고 일주일에 고작 두 번 하는 헤어팩을 빼먹었을 리는 더더욱 없으니, 원인은 단 한 가지 지난 일요일쯤 알게 된 그 모종의 일로 인한 스트레스인 모양이다. 거 참,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빠진다는 말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목격하게 되고 보니 어째 좀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간 참 속 편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이젠 한동안 편했으니 또 마음 고생 해야 될 '쿨타임'이 찼구나 하는 등등의 생각이 들어 샤워를 하고 나올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산다는 건 늘 이런 식으로, 한 고비 넘기면 다음 고비가 오고 그 고비를 넘기면 또 다음 고비가 오는 것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느 연예인이 말하기를 행복이란 별 게 아니라 하루를 다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일이 오는 게 두렵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살면 살수록 그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나는 언제쯤 되면 스트레스로 빠진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처녀귀신을 배수구에 키우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제 달도 바뀌었으니 봉안당에 가게 되면 그것부터 물어봐야겠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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