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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6. 2024

금 간 계란의 골든타임

-192

끓여놓은 카레나 찌개가 있다는 건 그냥 밥만 하면 복잡한 생각 없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서 좋다는 뜻이다. 순두부찌개나 카레 같은 메뉴를 웬만해서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 주 만에 온라인 마트에서 장을 봤다. 어제 산 항목 중에는 계란이 있었다. 계란이라는 식재료는 딱히 그것 단독으로 뭔가를 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도 없으면 뭔가 냉장고가 텅텅 빈 듯한 느낌을 주는 점이 참 묘하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계란이 여섯 개 정도밖에 안 되기에 이때쯤엔 또 10구짜리 한 줄이라도 사 둬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구나 싶었다. 냉장고 도어의 제일 윗 칸,  계란을 정리해 두는 곳에 꽂혀 있는 먹던 계란을 죄다 앞으로 끄집어내고 주문받을 계란을 꽂아놓을 자리를 만들던 중이었다. 미처 몰랐는데 계란 하나가 금이 가 있었다. 내용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깨진 것은 아니고 금만 살짝 가 있었던지라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다음날 순두부찌개를 먹을 참이니 거기 넣어서, 빨리 먹어치워야겠다 생각하고 금이 간 계란을 제일 앞으로 꺼내 놓았다.


그리고 어제, 순두부찌개를 끓이다가 계란을 하나 넣을 타이밍이 되었다. 늘 하던 대로, 그냥 계란을 꺼내와 툭툭 깨어서 끓고 있는 찌개 냄비에 홀랑 넣으려다가 왠지 좀 뒤통수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계란은 내가 기억하기로 마트에서 주문한 지가 최소한 몇 주 전이고, 냉장고에 넣어둔 계란이 저희들끼리 부딪혀서 금이 간 게 아니라면 이 계란은 배송돼 올 때부터 이미 이런 상태였다는 말이 된다. 계란은 껍질을 깨서 내용물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미생물에 오염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 거라면 이 계란은 최소 몇 주간 껍질에 금이 간 채로 바깥의 오염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뜻이 되는 셈이었다. 


괜히 금 간 계란 하나 아깝다고 안 버리고 먹으려다가 두 끼는 더 먹을 수 있을 만큼 남은 찌개를 통째로 버리게 되는 건 안 될 말이어서, 나는 답지 않은 조심성을 발휘해 그릇을 하나 꺼내 놓고 거기다 계란을 깨 보았다. 언뜻 보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노른자의 절반 정도가 껍질에 들러붙어 내려오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노른자는 터졌다. 아, 안 되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란을 버리고, 냉장고에 들어있던 멀쩡한 계란 하나를 찌개에 넣어 끓인 후 무사히 밥을 먹었다. 그래도 그 금 간 계란 하나에 대한 찜찜함이 어제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내내 남아 있었다. 배송받고 계란 챙겨 넣을 때 조금만 더 유심히 살폈더라면 프라이라도 해서 맛있게 먹었을 텐데.


마트에서 산 계란이 금이 간 채로 배송된 것까지야 내 잘못이 아니라곤 해도, 그런 걸 지금껏 알지도 못하고 방치했다가 결국 고스란히 버리게 된 것은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인 게 맞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껍질에 금이 간 계란 하나 먹어치우는 별 것 아닌 일에조차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그런 생각을 한다. 당신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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