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Jun 07. 2024

6월이니까, 선풍기를

-193

얇아빠진 차렵이불 하나를 달랑 덮고 자는데도 슬슬 잠자리가 쾌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참이다. 급기야 얼마 전부터는 잘 때 침대 쪽으로 창문을 열고 그 위로 블라인드를 내리고 자고 있다. 그렇게 하면 새벽의 식은 공기가 그래도 후덥한 감을 좀 많이 없애 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뭘 좀 하느라 움직이거나 밥 준비를 하느라 불 앞을 왔다 갔다 하노라면 여지없이 콧잔등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느낌이 나곤 해서 날씨가 미쳤나 하는 귀먹은 투덜거림을 흘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래도 땀이 나는 건 그 때뿐이고, 자리에 앉아 찬 물이나 한잔 마시고 한숨을 돌리면 또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아무리 요즘 계절이 봄가을이 없다지만 그래도 나의 상식에 의하면 5월은 봄의 범주에 들어가고, 그래서 이 시기부터 벌써 덥다는 생각 따위를 해서는 올여름을 어떻게 날지 앞이 캄캄해지기 때문이다.


어제는 밤까지도 제법 푹하다는 기분이 들어 몇 번이고 나도 모르게 손부채질을 했다. 아니 도대체 기온이 몇 도길래 이렇게 덥나 하고 핸드폰의 날씨 어플을 켜 봤다가 기겁을 했다. 이번주 내내 최고 기온이 낮으면 27도, 높은 날은 29도였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30도는 일종의 심리적인 방어선이다. 이 온도를 넘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더운 것이다. 이제 겨우 6월 초인데, 벌써 기온이 여차하면 30도를 넘어갈 정도로 후끈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새벽 한 시도 넘은 시간에 다용도실을 뒤져서, 지난겨울 갑작스러운 입원 끝에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 황황히 싸 넣어놓았던 선풍기를 꺼냈다. 날개를 싸는 부분의 선풍기 커버를 이에 딱 맞게 맞추는 건 여전히 좀 힘든 작업이어서 용을 좀 쓰느라 저도 모르게 땀이 바싹 났다. 그렇게 한참을 낑낑거려 겨우 선풍기 조립을 끝내고, 서랍에 넣어두었던 선풍기 리모컨에 빼놓았던 수은 전지를 끼워 선풍기를 틀었다. 근 1년 만에 쐬는 바람은 참 여전히 시원해서 이 신새벽에 부린 때아닌 난리법석을 적당히 합리화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자, 아무려나 호들갑을 떨며 5월에 선풍기를 꺼내는 짓은 하지 않고, 어쨌든 내 기준 상 '초여름'인 6월에 선풍기를 개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내 기준으로 에어컨은 웬만하면 7월이나 되어야 틀어야 맞기 때문에 내 계획대로라면 어떻게든 이번 한 달은 이 선풍기 한 대를 붙들고 이제부터 하루가 다르게 훅훅 더워지기 시작할 이 날씨를 잘 견뎌야 한다. 내가 아무리 뒤로 물러앉아 미적거려도 시간은 흘러가고 인생도 흘러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닥쳐올 시간을 무사히, 있는 힘껏 살아내는 것뿐일 것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 간 계란의 골든타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