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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8. 2024

안녕하세요, 모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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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환경 하에 있어도 유독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렇다. 이건 아주 어렸을 적부터도 그랬다. 어릴 때야 '살이 연해서 모기가 침을 꽂기 쉬워서 그런 모양'이라길래 그런가 보다 했지만 나이를 먹고 살이 더 이상 연하지 않은 나이가 돼도 여러 사람 중에 나만 모기에 헌혈당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다. 그 대신 나는 상당히 둔한 편이어서 잠결에 모기가 앵앵대고 달려들어도 손부채질 몇 번을 하고 다시 잠들거나 뿌리는 살충제를 침대 주변에 대충 뿌리고는 쉽게 다시 자는 편이라 모기를 잡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예민한 성격은 아니어서 그건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드디어 선풍기를 꺼냈다는 글을 바로 어제 썼다. 여름이 온다는 말과 모기가 보인다는 말은 내게는 어느 정도 동의어인 편인데, 역시나 이번에도 그랬다. 집안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내가 선풍기를 꺼내면 그때부터 활동을 개시하리라고 마음이라도 먹고 있었던 것 모양, 오늘 하루만 벌써 서너 군데나 모기에 물렸다. 그중 한 군데는 심지어 콧볼 바로 옆이어서 가뜩이나 예쁘지도 않은 얼굴이 더 볼품없어 보이기는 한다.


선풍기를 꺼냈으니 이제 여름날 준비 절반은 했다고 생각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당장 주말에는 어느 구석에 처박아놨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모기향 훈증기를 찾으러 온 집안을 뒤져야 하게 생겼다. 그리고 그 훈증기에 꽂을 카트리지가 남아있던지도 찾아봐야 하고, 없으면 좀 사 오기도 해야 하겠다. 재가 날리는 것도 귀찮고 매캐한 냄새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태우는 모기향은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모기가 너무 극성이다 싶으면 태우는 향을 며칠 정도 피우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여름이 오긴 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요즘 모기는 사철 모기라 한겨울 한두 달을 제외하고는 상시로 있고 심지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을 오르내리기도 한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까지 스마트하고 똑똑하고 끈질긴 모기를 만나본 적은 없긴 하지만, 아무튼 또 반갑지 않은 손님과 몇 달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긴 해야 할 모양이다. 왜 사람이 둘인데 모기는 나만 무는 걸까 하고 부르퉁해 있으면 그는 A형이 피가 달아서 모기가 좋아한대 하는 말을 하곤 했다. 아니 내 피가 두유도 아니고 A형이면 달고 O형이면 안 달고 그런 거냐고, 뭐 그런 말을 하다가 웃곤 했었다. 원래도 모기 같은 건 잘 안 물리던 사람이었으니 거기 가서도 모기 걱정은 하지 않고 지내겠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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