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Jun 09. 2024

방충망 대치기

-195

한 며칠 날이 좀 과하게 푹하다 싶더니 그제는 기어이 오후부터 비가 추적추적 왔다. 내리던 비는 어제 오전까지도 계속 왔다. 덕분에 날이 좀 싹 식은 느낌이어서 좋긴 했는데, 가뜩이나 후덥지근한 기온에 창문을 마음대로 활짝 열어놓을 수가 없어서 좀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제 아침의 일이다.


내 책상에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창문에,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벌레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아주 가늘고 길다란 회색 몸통에 검정색 물방울무늬 비슷한 땡땡이 무늬가 있었고, 비정상적으로 길다란 더듬이와 다리가 있는, 저게 도대체 뭐라는 벌레이며 어쩌다가 우리 집 창문 같은 곳에 붙어있게 된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이상한 벌레였다. 처음엔 그냥 신기한 벌레가 있네 하는 정도의 감상이었다. 방충망 밖에 붙어있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벌레가 바깥에 붙어있는 거라면 배가 보여야지 등이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나는 화다닥 잠시 열어두었던 안쪽 창문을 닫았다. 그래놓고서야 창문에 접근해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끄덕끄덕 움직이는 더듬이가 유리창을 지나가는 걸 보니 이 벌레는 바깥이 아니라 집 안에 있는 게 맞았다.


순간 식은땀이 찔끔 났다. 나는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 등의 소위 해충이 아닌 이상 벌레를 웬만해서는 잘 죽이지 않는다. 아니 죽이지 못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내가 물티슈 등을 동원해 살짝 집어다가 창 밖으로 놓아줄 수 있는 건 무당벌레 정도가 고작이고, 도대체 어떻게 집안까지 들어온 건지 분간도 되지 않는 그 외의 각종 벌레들에 대해서는 안쪽 덧창문을 닫고 방충망을 한 뼘 정도 열어놓은 채 제발 그쪽으로 좀 알아서 나가 주십사 하고 비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심지어 크기도 제법 크고 생김새 또한 처음 보는 이 낯선 벌레쯤이 되면 덩치가 아깝게도 내가 되레 겁을 먹어 연신 닫은 안쪽 유리창의 유리를 두드리며 제발 좀 알아서 나가 달라고 읍소하듯 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마음 따위는 알 바 없다는 듯 벌레는 방충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채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추 10분쯤을 대치했다. 어차피 안쪽 유리창은 닫았으니 거기서 더 집안으로 들어올 방법 같은 것은 없고, 한 뼘쯤 방충망을 열어놨으니 제가 살려면 그리로 알아서 나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비 오고 습한 날씨에 손가락 한 마디 남짓한 벌레 한 마리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있는 나 자신이 그지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물티슈를 세 장이나 뽑아 겹쳐 쥐고는, 그 이름 모를 벌레를 살짝 집어다가 창 밖에 내놓고 후다닥 방충망을 닫았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뭐라는 벌레인지는 모르나 인간의 집 근처를 얼쩡거려 좋을 일은 없으니 절대로 오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내일모레면 나이가 50이고 통상적이라면 지금쯤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애가 있을 나이인데 아직도 벌레 하나를 혼자 못 잡아 이 난리를 부리고 있으니 이 풍진 세상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에 잠깐 맥이 풀려 있었다. 이게 다 쬐끄만 나방 한 마리만 들어와도 내가 뭘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잡아버리곤 하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져 버려서 그런 거라고, 그런 해먹은 핑계를 대 본다. 그게 벌써 2년이나 전인데도.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하세요, 모기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