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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10. 2024

다음 칫솔을 살 때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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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가격 봐서 적당히 사게 되는 물건 중에 칫솔이 있다. 보통 칫솔은 한 번 사면 몇 개씩 든 묶음 상품을 사게 되고 그걸 다 쓸 때까지는 제법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다음번에 칫솔을 살 때는 이런저런 점을 고려해서 사야겠다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죄다 까맣게 잊혀지고 난 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젠 그렇게 산 칫솔을 둘이서도 아니고 나 혼자 다 써야 하게 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지금 쓰는 칫솔은 헤드가 보통 칫솔의 절반 정도 크기로 나온 상품이다. 처음엔 내가 또 뭘 대충 보고 어린이용 칫솔을 잘못 샀나 싶어 빈정이 확 상했었는데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어금니 안쪽까지 깨끗하게 닦을 수 있도록 헤드 자체가 작게 디자인된 제품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써 보니 입의 가장 안쪽까지 칫솔이 좀 더 쉽게 잘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해서, 헤드가 작은 칫솔은 이런 맛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얼마 전부터 칫솔의 가장자리 쪽 칫솔모가 조금씩 옆으로 벌어지기 시작해서 칫솔을 바꿔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뒤져보니 여분 칫솔이 하나도 없어서,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또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개수가 든 칫솔 한 묶음을 주문했다. 이번에 온 칫솔은 원래 쓰던 작은 헤드가 아닌 아주 일반적인 크고 두툼한 헤드의 보통 칫솔이다. 첫 개시로 주황색 칫솔을 꺼내서 치약을 듬뿍 묻혀 양치를 해 봤다. 지난번 칫솔처럼 세심하게 꼼꼼히 닦이는 느낌은 좀 덜하긴 하지만 확실히 뭔가 퍽퍽 시원하게 닦이는 감이 있었다. 아, 역시 양치는 이렇게 벅벅 닦다가 가끔 잇몸에서 피도 좀 나고 그러는 게 제맛이지. 다 쓴 칫솔로 욕실 바닥 같은 걸 닦을 때도 좋을 것 같고 말이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헤드 작은 칫솔이 좀 더 세련돼 보이는 맛은 있긴 했는데. 칫솔꽂이에 꽂혀 있는 새 칫솔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떻게 된 게 현대적이고 세련된 물건과는 합이 썩 좋지 않은 모양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 기분은 그리 오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산 칫솔은 자그마치 8개가 들어있는 묶음 상품이었고, 나 혼자 그 칫솔 여덟 개를 다 쓰려면 거짓말 좀 보태서 1년 정도는 지나야 다음 칫솔을 사게 될 테니, 그때도 아마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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