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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11. 2024

양산 하나 장만하세요

-197

안 그래도 사는 것 머리 아픈 와중에 또 해결해야 될 문제 하나가 터진 걸 알고 멘탈이 나가 있었던 게 지난 5월 말쯤의 일이다. 이 나이를 먹고 내가 터득한 감히 인생의 진리라 할 만한 사실 중의 하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알아서 해결되는 편리한 일 같은 건 세상엔 없다'는 사실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뭔가를 해야 그 일은 끝난다. 그래서 어제는 벌어진 일의 수습을 위해 첫 발을 떼는 날로, 그렇게 내심 정해놓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가 이런저런 볼일을 보고, 오후엔 그의 봉안당에 들렀다.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만저만해서, 결국 내가 사는 건 여전히 속 시끄럽고 머리 아픈 일 투성이고, 그래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이제 오늘부터 그 일을 수습해 보려고 한다는 말까지를 담담하게 고했다. 당신이 아직 로또 1등 번호 점지해 주는 재주는 없을지 몰라도 이런 류의 골치 아픈 일들은 그래도 꽤 잘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도 잘 좀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꽤나 자주 징징거리러 올 것 같다는 선전 포고도 같이.


이제 6월 중순에 접어드는데 내가 날씨를 과소평가했던 모양이다. 집에서 나갈 때 반팔 피케티를 입고 나간 건 별 뜻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그냥 오늘 하루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야 할 테니 덥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웬걸, 별로 안 돌아다녔어도 더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늘 날씨가 왜 이렇게 더워, 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핸드폰의 날씨 어플을 켜 보니 어제가 문제가 아니라 이번주 내내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다는 예고가 살벌하게 떠 있었다. 아이고, 꼼짝없이 여름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봉안당에 가면 자주 뵙는 직원 분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날씨 이야기를 했다. 이번 주에 벌써 30도 넘게 올라간다더라고, 아무래도 에어컨 틀어야겠다는 말을 인사처럼 주고받았다. 볕이 이렇게 쨍쨍 나는데 양산이라도 하나 장만하세요. 요즘은 노티 안 나고 예쁜 양산도 많던데요. 다른 데도 아니고 여기 온다고 얼굴 타면 계시는 분도 마음 안 좋을 거 아니에요. 직원 분은 그렇게 말하며 웃으셨다. 아, 그러려나.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한동안 코로나니 뭐니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감추고 다니느라 선크림도 안 바르고 잘도 돌아다녔었다. 이젠 그럴 핑곗거리도 사라졌고 이 뙤약볕에 열심히 발품을 팔고 돌아다녀야 할 건수가 한가득이니 정말 양산 하나 장만해야 하려나 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자기한테 다니느라 내 얼굴이 타면 그건 꽤 속상해할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은 꽤 분명한 사실이라서.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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