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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14. 2024

미수에 그친 여름감기

-200

생각해 보니 컨디션이 좀 이상했던 건 그저께 오후 정도였던 것 같기도 하다. 까닭 없이 콧물이 좀 나고 재채기가 몇 번 연거푸 나왔지만 그냥 그러고 말기에 적당히 잊어버렸다.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고, 그래서 특별히 감기 같은 게 아니어도 가끔 이런 식으로 발작하듯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 아침 눈을 떴을 때 난 대번에 이거 뭔가 잘못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 목이 따가워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고 저도 모르게 계속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감기에라도 걸렸다는 거야 뭐야. 좀 황당해서 그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요 며칠 새 갑자기 날이 푹해진 건 사실이지만 에어컨을 기분껏 틀고 잔 것도 아니고 선풍기 정도나 틀어놓고 자는데 감기라니. 더듬더듬 약들을 넣어두는 서랍을 뒤졌다. 언젠지 기억도 안 나던 때에 편의점에서 파는 세 알 짜리 종합감기약을 한 팩 사서 그나마 두 알은 먹고 한 알이 겨우 남아있었다. 이거라도 안 먹는 것보단 낫겠지 하는 기분으로 그 약을 먹었다.


그러나 이미 감기약 한 알 정도로 대충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타이밍은 지난 모양이었다. 목은 점점 더 아팠고 콧물에 재채기도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나는 쌀을 씻어서 취사 버튼만 누르면 되게끔까지 준비를 해놓고 한참이나 투덜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버스 정류장 하나 정도 떨어진 약국까지 약을 하러 갔다. 그가 있던 무렵에는 집에서 아주 가까운 약국도 두어 군데나 있었지만 장사가 잘 안 되던지 그새 모두 폐업해 버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에 가려면 버스로 한 정거장 정도는 걸어야 한다. 나는 약사님에게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난다는 증상을 말씀드리고 약 두 가지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자마자 두 알씩을 먹었다.


본래도 점심을 먹고 나서 한 시 전후로 유독 좀 졸리는 시간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어제는 정도가 심했다. 졸려서 좀 으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라 자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것 같은 졸음이 밀려와 나는 결국 의자를 젖혀놓고 15분 정도 잤다. 이렇게 주체가 안 되는 졸음은 간만이어서, 이게 단순한 식곤증 같은 것이 아니라 감기약 후유증 비슷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졸음은 저녁 약을 먹고 나서도 똑같은 강도로 쏟아져서 전에 없이 해도 다 저문 시간에 또 한 15분 정도를 처절하게 졸았다. 그렇게 하루종일 빌빌대고 난 결과,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목 통증도 콧물 증상도 없어져서 그나마 싸게 치이고 넘어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그리고 혼자 아픈 것쯤 되면 조금 더 서럽다. 감기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불편하지만 여름감기가 어째 더 성가시다는 느낌은 있다. 몸이 아픈데도 여전히 덥고, 여전히 찬 것이 먹고 싶고, 여전히 답답하기 때문에 말이다. 올여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초입이고, 이 긴긴 여름 내내 제발 다시 감기 같은 일로 골머리 썩이지 않도록, 이번 일로 잘 때우고 넘어갔으면 하고 바라본다. 에어컨 바람도 아닌 선풍기 바람에 든 감기라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퍽 억울한 일이기도 할 테고.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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