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밤이라

-213

by 문득

며칠째 그럭저럭 버틸만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낮에는 물론 덥지만(특히 나갔다 오기라도 하면 더더욱)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에어컨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선풍기도 하루종일 켜지까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지낼만해서 아마도 본격적인 폭염이 찾아오기 전 마지막 숨 고르기를 하는 타이밍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선선한 날씨에 에어컨을 켜는 건 뭔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며칠 때 그냥 창문을 열어놓는 걸로 지내고 있다. 다만 해가 지고 밤이 오고 나면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환하게 불을 켜놓는 건 사방의 벌레들을 다 불러 모으기도 하겠고 어딘가 부담스럽기도 해서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스탠드와 모니터만 켜 둔 상태인데 이건 이것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어서 쓸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창가에 내놓은 화분을 들여놓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을 밤이 꽤 늦고서야 깨닫고 화분을 들여놓으러 나갔다가 그만 그 자리에 발을 멈췄다. 저 쪽 앞 아파트 단지 너머로 달이 둥그렇게 떠올라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떠난 이후로 오후 대여섯 시만 되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듯 두 겹의 창문을 모두 닫고 블라인드까지 꼭꼭 내린 채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창문 너머 이렇게 둥그렇게 달이 뜬 것을 본 것은 아마 일부러 달을 보러 창문을 열었던 올해 대보름 이후로는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발을 멈추고 약간 귀퉁이가 이지러진 채 둥실 떠 있는 달을 처음 보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아마 저쯤 어딘가에 있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보다는 좀 더 즐겁고 행복하고 걱정 없는 곳에서 나 같은 건 까맣게 잊었으려나 싶다가도, 아니 그래도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생떼를 혼자 써 본다. 실제로 그가 떠나간 후 내게는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뭔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길을 잡아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몇몇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먼저 가도 너 먹고살 거리는 다 장만해 놓고야 갈 거라고 늘 말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먼저 떠나게 된 게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서. 그런 생각을 하느라 들여놓으러 간 화분을 챙기는 것도 잊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고개가 아프도록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잠깐의 선선한 며칠이 지나가고 나면 또 숨조차 쉬기 힘든 더위가 찾아오겠지. 가뜩이나 이런저런 머리 아픈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이번 여름은 역시나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함께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지지만 뭐 그리 오래야 걸리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여름 더위가 닥치기 직전의 이 짧고 선선한 초여름밤처럼.


5411_6292_5339.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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