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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26. 2024

세면대 노이로제

-212

얼마 전부터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는 일 중 하나로 욕실 세면대를 들 수 있겠다. 세면대에서 하는 일이래봤자 양치나 하고 세수나 하는 것 말고 별다른 것도 없는데 왜 그런지 어느 날부턴가 물이 빠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샤워를 다 마칠 때까지도 세면대에 찬 물이 채 다 빠지지 않아 그 물이 다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세면대를 한 번 닦아내고 나가느라고 한참을 서 있는 일이 생기고 있다. 머리카락 등이 배수구로 흘러들어 가 관이 좁아지기 때문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하는데, 겪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유튜브 이곳저곳을 검색해 본 바 세면대 아래 배관의 어느 부분을 뜯어내고 트랩을 갈아주면 된다고 한다. 뭐 별로 어렵지도 않고 초보자도 5분이면 할 수 있다는 아주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초보자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을 잘 믿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일단 욕실로 되돌아가서 우리 집 세면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우리 집 세면대는 세면대 아래의 배관을 도기로 된 타일이 감싸고 있으며 그 이음매 부분이 마감 처리까지 되어 있어서 이걸 뜯어내지 않는 이상은 배관에는 손도 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지 하는 생각에 입을 삐죽거렸다. 뭐든지 그렇게 쉽게 쉽게 해결될 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인터넷에서 아주 독하다는 배수관 클리너를 두 통이나 사서 들이붓고는 하룻밤 동안 세면대를 동결했다. 그러고 나니 한결 나아지긴 했다. 그러나 한 번 그렇게 하고 난 후로도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세면대에 물 빠지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진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그 독한 클리너를 몇 동씩 사서 들이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요즘은 궁여지책으로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저렴한 배수관 클리너를 사다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일정 용량만큼을 부어 놓고 한두 시간 후에 그 위로 뜨거운 물을 한 주전자씩 붓는, 소위 선제적 사전 예방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있던 동안에는 이 집에 10년 넘게 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세면대에 물이 빠지지 않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욕실 세면대가 사람을 봐 가며 말썽을 부릴 리도 없고, 그가 있을 땐 생전 이런 일이 없다가 그가 떠나고 나니 이때다 하고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다. 그러니 답은 하나뿐이다. 그가 욕실 세면대를 음으로 양으로 돌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그래서 우리 집 세면대는 배관이 막혀서 물이 안 빠지는 일 따위는 죽어도 생기지 않는 줄 알았다는 것. 그것 밖에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없지 않을까.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이런 식으로 느끼게 된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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