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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8. 2024

잘못한 사람도 상처받습니다

-234

지난여름의 갑작스러운 입원 및 서너 달간의 부재로 나는 꽤 많은 곳에서 실인심을 했다. 일이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최후의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그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나는 내가 하기로 되어 있던 일의 대부분을 제때 잘 해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여러 군데에 민폐를 끼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격 모독에 가까운 언사도 몇 번이고 들었다.


그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나는 마감을 어긴다든가 해야 하는 일의 퀄리티가 나빠서 리테이크를 먹는다든가 하는 일이 거의 한 번도 없었고 그러던 기간이 수년 정도 있었기 때문에, 그때 쌓인 '마일리지'를 믿고 다소 안일했던 것이 사실이긴 하다. 이번 일로 뭐가 좀 많이 골치 아파지긴 했지만 내가 그간 해온 것들이 있는데(더해서 다른 것도 아닌 건강 문제였으니까) 이번 한 번 정도는 좀 적당히 봐주지 않을까 하는 무른 생각을 했던 것이 문제였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냉정했고 칼 같았다. 그 안일함의 대가로 나는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심리적인 평정이 깨어지는 몇몇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듣고도 말없이 고개만 숙여야 했다. 그리고 어쨌든, 그렇게 퇴원 후 엉망진창이 된 집과 내 몸 추스르기도 전부터 수습을 하러 여기저기 뛰어다닌 바 그 일은 누구에게도 손해 끼치지 않고 무사히 수습되긴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 또한 상대방 측에 빈정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일하고 있던 거래처 몇 군데와 본의 아니게 연결이 끊어졌다. 그쪽에서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 또한 응당 해왔듯 먼저 인사차 전화해서 일거리 좀 없느냐고 물어보던 것을 하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 그런 식으로 끊어졌던 거래처 한 군데에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 액정에 뜨는 전화번호를 바라보는 기분은 몹시 씁쓸했지만 일단 일부러 원수를 질 필요는 없으니 전화를 받았다. 뭔가 또 내부일정이 꼬여서 처리가 애매해진 일이 좀 남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짐짓 다 알아듣고도 나는 딴청을 부리며 그 일 주시면 제가 하겠다 라는, 아마 그쪽이 듣고 싶어서 전화했을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쪽에서 먼저 이 일 좀 맡아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꺼냈다. 나는 지난번에 그런 일도 있었고, 이젠 죄송해서 그쪽 일은 제가 못하죠 하고 웃으며 그 말을 거절했다.


전화를 끊고도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그 일은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마 내 일신의 불찰로 생긴 문제가 맞으니 일단은 내 책임인 게 맞다. 그 과정에서 오고 간 지나치게 날 선 말들에 대해 나는 단 한 마디의 사과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상대방 측에서는 '일이 잘 해결됐으니 이제 다 끝난 일'이라고만 생각되는 모양이다. 나는 아무래도, 내가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에 그런 식으로 내 가슴에 못을 박은 사람들이 마냥 좋게만은 대해지지 않는데 그 사람들은 '이제 다 끝났으니 다시 예전처럼 좋게 일하자'고 한다.


모르겠다. 내가 철이 덜 든 건지. 아직도 아쉬운 맛을 덜 본 건지. 혹은 덜돼먹은 인간인 건지. 그러나 그 일로 벌어진 이런저런 문제는 결국 내가 어떻게든 다 해결해서 원상복구가 된 거라면, 그 과정에서 내가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그때 말이 심했다든가 오해해서 미안하다든가 하는 가장 쉽고 기본적인 사과 한 마디를 하지 않을까. 그냥 그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에? 뭐 그런 거라면 할 말도 없긴 하다. 이럴 땐 그가 없어서 정말 아쉽다. 그라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내 편을 들어서 그 사람들이 심했다고 말하지도 않고 강 건너 불 보듯한 얼굴로 그건 네가 철이 덜 든 거라고 말하지도 않고, 정말로 누가 어느 만큼 잘못한 건지를 정확하게 말해줄 텐데. 그런 점에 있어서만은 그는 꽤 믿을만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그건 네가 철이 덜 든 거라고 말했으면 난 조금 억울해도 그냥 수긍했을 텐데.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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