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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9. 2024

배송비를 아까워하면

-235

늘 하는 이야기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인 걸로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식으로 그 값을 다 치르고 있을 뿐이다. 공짜일 리가 없는 무언가가 공짜라면 그건 분명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인터넷으로 물건 하나를 살 때마다 2천5백 원에서 3천 원 정도의 그리 비싸지도 않은 배송비가 붙어서 나오는 상품은 일단 우선리스트에서 제외된다. 그 물건이 빠르면 하루 늦어봐야 이틀 정도 안에 내 집 앞까지 날아오는 일이 공짜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는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이 '배송비 무료'의 함정을 가장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건 마트에서 주문을 하기에는 뭔가 좀 애매해서 슈퍼마켓에서 주문을 할 때다. 즉시배송 주문은 최소주문금액과는 별개로 무료배송 금액이라는 게 따로 책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2만 원 이상울 주문해면 배송을 해주기는 하지만 배송비 3천 원이 붙고, 3만 원 이상을 주문하면 그 배송비조차 받지 않는다는 뭐 그런 식인 것이다.


이번주는 간만에 이틀이나 집을 비우고 나갔다 돌아왔고, 덕분에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스케줄과 집 근처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다 나를 스케줄이 순차적으로 꼬여서 애매한 몇몇 가지 물건을 따로 주문해야 하게 생겨서 또 슈퍼마켓 배송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창밖에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다가 얼마 전 받아서 쟁여놓은 4천 원짜리 할인 쿠폰의 파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만 담고 금액을 확인해 보니 최소 주문금액에 조금 모자란다. 아 뭐, 이 정도야 웃으면서 채울 수 있다. 물티슈 서너 개를 추가로 담았더니 배송 가능 금액은 넘겼지만 무료배송 금액을 채우지는 못한 관계로 배송비 3천 원이 붙어 있었다.


그 3천 원이 쓸데없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홈페이지의 카테고리를 일일이 훑고 할인행사 페이지와 이벤트 페이지를 이 잡듯이 뒤져가며 만 원어치 더 살 물건이 없나를 혈안이 돼서 찾았다. 그렇게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 몇 가지를, 내가 늘 하는 말대로 '마트에서 사는 물건은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 써도 쓴다'는 말을 무슨 주기도문 외우듯 외우면서 카트에 꾸역꾸역 눌러 담았다. 아, 드디어 그 눈에 거슬리던 배송비 3천 원을 떼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놓고 주문을 하려고 결제창으로 갔더니 문제의 쿠폰이 보이지 않는다. 꾸물거리는 사이에 기간이 만료됐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 쿠폰은 주문 금액 4만 원 이상일 때만 사용이 가능한 쿠폰이다. 그러니 그 쿠폰을 써먹으려면 다시 만 원어치 물건을 더 사야 하는 것이다.


순간 이게 다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결국 나는 배송비 3천 원을 내지 않으려고 미련스레 우겨 담은 만 원어치의 물건들을 도로 카트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배송비 무료도 쿠폰 할인도 모두 포기하고 당초 계획대로 2만 3천 원(이중 3천 원은 배송비다)어치의 물건만을 주문했다. 3천 원을 아끼자고 만 원을 더 쓰고, 거기다 4천 원을 더 아끼자고 추라고 만 원을 더 쓴다면 7천 원 아끼자고 2만 원을 더 쓰는 셈이 되는데 하마터면 그런 짓을 할 뻔 했다는 뒤늦은 자각이 뜨끔하게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사실 그렇다. 이런 마트 배송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뭔가를 살 때도 무턱대고 무료배송만을 놓고 찾다 보면 배송비까지 포함한 금액보다 더 비싼 가격에 주문을 하게 돠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 배송비 3천 원이 뭐라고, 그거 더 내는 게 죽을 만큼 손해라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몇 번이나 그런 실수를 한 적도 있었던 게 기억났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처럼 보이는 게 있다면 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값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배송비를 지나치게 아까워하면 그 배송비 이상으로 돈을 더 쓰게 된다. 배송비 3천 원 아끼자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만 원어치나 더 살 뻔했던 나처럼. 뭐 사람은 이런 식으로 철학자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워낙 장보는 스케줄이 체계적이었고, 그래서 무료배송 따위는 신경쓸 필요가 1도 없었던 그 같은 사람은 예외겠지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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