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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19. 2024

표고버섯의 수수료

-266

'답지 않게' 냉장고에 꼭꼭 사다 놓는 식재료 중에 표고버섯이 있다. 내 부엌살림이 대개 그렇듯 이것 또한 그의 어깨너머로 배운 버릇 중 하나다. 국물을 낼 때든 볶음요리를 할 때든 표고버섯이 하나 들어가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생각보다 아주 크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그래서 딱히 음식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냉장고 속에 언제나 표고버섯 몇 개 정도는 넣어두고 있다. 그는 버섯의 기둥까지도 잘라두었다가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육수를 내는 용으로 쓰곤 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그냥 그때그때 적당히 먹던지 버리던지 하는 편이다.


다만 문제는, 버섯은 다른 야채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물이 잘 생기고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내버려 뒀다가는 그대로 곰팡이가 슬기도 대단히 쉽다는 점이다. 같은 균류인데 버섯에도 곰팡이가 피냐는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했다가 어디 가서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마트에서 버섯을 담는 데 쓰는 플라스틱 통 하나를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거기에 담으면 아주 조금 낫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도 완벽한 방비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욕심스레 표고버섯을 한 팩씩 사서는 그중에 두세 개 정도는 무슨 수수료 비슷하게 곰팡이가 슬어서 한번 손대보지도 못하고 버리기를 매번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 표고버섯 한 팩을 사고는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하고 심기일전을 했다. 보통 버섯 한 팩을 사면 예의 플라스틱 통에 버섯이 좀 눌리더라도 꽉꽉 우겨담아 냉장고 야차칸에 처박아 뒀었는데 이번엔 그러지 말아 보자고 딴에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키친타월을 뜯어다 플라스틱 통의 바닥에 깐 후에 서로 겹치지 않도록 버섯을 반 정도만 넣고 그 위에 다시 키친타월로 덮은 후 뚜껑을 닫아 야채칸에 넣었다. 그리고 남은 버섯은 역시 넓게 뜯은 키친타월에 가볍게 싸서 비닐팩에 넣었다. 그리고 밥을 차리느라 버섯을 꺼내 쓸 때마다 키친타월을 갈아주는 다소 귀찮은 짓을 했다. 이것은 나 혼자서라면 절대로 나올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고,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한 끝에 나온 일종의 흉내였다.


그렇게 열두 개가 들어있던 표고버섯 한 팩을 사다가, 오늘 치킨마요덮밥을 해 먹느라 하나를 쓰고 보니 이제 버섯은 네 개가 남았다. 여느 때라면 벌써 적으면 두세 개, 많으면 네댓 개의 버섯을 곰팡이 때문에 그냥 버렸을 터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온 버섯의 3분의 2를 먹어 없애는 동안 곰팡이가 나서 버린 버섯이 한 개도 없다. 남은 버섯 네 개도 갓 아래의 색깔이 변하거나 하는 낌새가 전혀 없어서 별일 없으면 마지막까지 버리는 일 없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 표고버섯은 이렇게 해 놓고 먹어야 안 버리고 다 먹을 수가 있구나. 그런 결론을, 조금은 이르지만 내려 본다. 이렇게 아주 더디게나마 조금씩 야무지게 변해가는 모양이다. 아직도 나 혼자 힘으로는 그런 생각이 잘 나지 않고, '그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어댑터'가 꼭 필요하긴 하지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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