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Aug 18. 2024

백중이 뭐하는 날인지

-265

얼마 전에 24 절기에 대한 글을 어설프게나마 썼었다. 절기가 입추에 접어든다는데 날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처서쯤 되면 진짜로 좀 식는다니 기다려볼까 하는 글이었다. 사실 그 처서가 이제 겨우 나흘 남았는데 아직도 연일 폭염 경보가 쏟아지는 지금, 과연 그 '처서 매직'이 정말로 실현될까는 살짝 의심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긴 하다.


24 절기는 어디까지나 한 해 동안 농사를 짓는 스케줄에 맞춘 절기로,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시절에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에게 24 절기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청명이니 망종이니 하는 절기는 날짜가 문제가 아니라 이름조차도 낯선 경우가 많고 동지 같은 날은 숫제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삼복 같은 경우는 공식적으로 24 절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쯤에 가버리면 내가 도대체 24 절기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뭔가 하는 가벼운 회의감마저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은 삼복과 비슷하게 얼핏 생각하면 24 절기에 포함될 것 같지만 24 절기에는 포함되지 않는 백중이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 또한 나이가 40이 훌쩍 넘도록 백중이라는 날이 언제 근방이며 정확히 뭘 하는 날인지도 모르고 지냈다. 그가 그렇게 황황히 내 곁을 떠나고 나서 뒤늦게야, 뭐라도 해줄 것이 없겠는지를 인터넷 곳곳을 이 잡듯이 뒤지다가 백중입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백중이 서양의 할로윈처럼 먼저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제를 지내는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내 곁에 좀 더 오래 있었더라면 내가 이 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아마 지금보다도 훨씬 뒤였을 것이다.


백중은 동지나 삼복처럼 특정한 뭔가를 먹는 날도 아니고 춘향이와 이몽룡이 처음 만난 날로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단오날도 아니고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 얼어 죽는다' 같은 강렬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날도 아니어서 아마도 나와 비슷하게 곁에 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는 분들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관련한 글을 브런츠에 몇 번 쓰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중 혹은 백중입제에 관한 검색어는 내 브런치의 유입 검색어에 개근하듯 모습을 드러낸다.


올해의 백중입제는 예전에 그와 함께 갔던 고향의 절에 올려 두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매주 열리는 불제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아마 오늘 또한 직접 법회에는 가보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그 대신 오늘도 이 글을 올려놓은 후 봉안당에나 가 보려고 한다. 이런저런 속 시끄러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고 이번 주에도 그와 관련한 꽤 중요한 일정이 있는 터라 지난달부터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순전히 징징대기 위해 찾아가고 있으니, 이쯤 되면 그는 저거 왜 또 왔나 하는 표정으로 귀를 틀어막고 짐짓 고개를 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넋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비는 백중이니 적어도 오늘만은 내 이야기는 접어두고 그곳에서 잘 지내는지, 행여나 못 그러고 있다면 잘 좀 지내보라는 덕담이나 하고 오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막상 얼굴을 보면 안 돼서 그게 문제지만. 그러게 누가 백중이 뭐하는 날인지 이렇게 빨리 알고 싶댔다고 그렇게 훌쩍 떠났는지 모를 일이다.


추가. 발행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나봐요. 발행이 다소 늦었습니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불을 혼자 덮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