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후면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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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머라이어 캐리라는 가수를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녀의 실제적인 데뷔는 그것보다 한참 빨랐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세계의 한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세계의 반대편까지 전해지는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의 시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의 데뷔 앨범은 'Vision of Love'나 'Love Takes Time' 등의 명곡이 즐비한 명반이었고 일단 노래도 노래거니와 '사람의 목소리로 이게 가능하냐'는 생각이 들게 만들던 그 미친 가창력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랬던 머라이어 캐리는, 뭐 역시나 세월엔 장사가 없다는 건지 요즘은 예전만큼 그렇게까지 위세 당당한 '팝의 디바'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전성기 시절 그녀의 대표곡들은 죄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한 곡만이 남아 그래도 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시즌에만은 한때 여왕이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그녀의 위상을 되새기게 한다. 뭐 그 한 곡으로만 한 해 80억도 넘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니 그녀의 입장에서야 그 어떤 명곡보다도 이 곡이 더 고맙고 소중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어느덧 9월에 접어들었는데, 이젠 슬슬 여름이 가을에 인수인계를 하고 떠나갈 채비를 해도 시원치 않을 시간인데 기온은 '역주행'을 해서 연일 한낮의 최고 기온이 33, 4도를 오르내리고 밤에도 26, 7도에서 내려가지 않는 '미친 추석'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추석 무렵 태풍이 와서 온 동네가 절단난' 이야기를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수태 들으면서 자랐지만(이 태풍이 그 유명한 '사라호 태풍'이다) 이제 나는 태풍 이야기 대신 추석인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야 했던 이야기를 내 아랫세대에게 대신 들려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머라이어 캐리가 드디어 활동을 개시했다는 뉴스를 봤다. 크리스마스가 딱 100일 남았다고 한다. 세상에. 뭐라고요. 크리스마스가 석 달 남은 이 시국에 한낮의 온도가 34도를 찍는다는 게 과연 정상인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추석 때까지도 덥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더워서 밤에 잠들기 힘들 만큼 덥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 석 달 남짓밖에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더위가 싹 물러가고, 수능 무렵의 눈물 찔끔 날만한 강추위까지 한 번 겹치려면 그 석 달 동안 기온이 얼마나 곤두박질쳐야 말이 될까. 그런 걸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살짝 아파 온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절감한다. 올해는 벌써 끝나가는데 정신 못 차린 날씨는 아직도 이렇게 덥구나 하고.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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