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효과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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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지나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마 5월 27일쯤이었지 싶다. 지나간 브런치 글을 뒤져보지 않아도 어렴풋한 날짜나마 기억나는 건 그날로부터 나를 괴롭히는 일 하나가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대충 마무리해서 이젠 두 번도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모종의 이벤트가 영화 다 끝나갈 무렵 전화를 걸어서는 '헬로 시드니?'를 속삭이던 그 스크림 가면을 쓴 연쇄살인마처럼 또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런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만 끝이라는 게 있는 건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 며칠 내심 끙끙 앓았다. 며칠 후 나름 털고 일어난 것도 어지간히 마음의 정리가 다 돼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내가 이렇게 다 죽어가는 시늉을 내본들 아무것도 달라질 리 없다는 나름의 냉엄한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리고 추석이 끝난 지 이틀이 지난 어제, 그 골치 아프던 일이 일단 일단락이 지어졌다.


그러나 결과가 다소 애매하다. 최선은 아닌 것만은 확실한데 그렇다고 최악도 아니다. 차선이라고 보자면 차선이고 차악이라고 보자면 차악인, 그런 애매한 성적표가 내 손에 쥐어졌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몇 년 전 이 일을 처음으로 봉합할 때는 그가 내 곁에 있었고, 그래서 뭘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하는 부분을 그가 상당 부분 코치해 주었고 나는 열심히 그 지시에 따라가기만 하면 됐었다. 그가 그런 식으로 갑자기 내 곁을 떠나가기 전 내를 위해 해 준 마지막 일이 그 일 때문에 써놓은 페이퍼를 검토해 주는 것이었으니까. 그가 그렇게까지 자신의 마지막을 살라 가며 애를 써준 탓인지 그 일은 비교적 무사히 봉합되는 듯 보였다. 그러던 것이 또다시 튀어나와 발목을 잡았고, 이번엔 그 누구의 코치도 조력도 없이 나 혼자서 그 일을 해결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는 점 하나가 내게는 위안이다.


해결은 되었다지만 아직도 몇 가지 자잘한 뒷수습이 남아 있다. 사실 자잘하다고 하기에는 꽤 규모가 버라이어티한 뒷수습이라 한숨부터 푹푹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건 그러니까, 일종의 풍선효과라고나 해야 할지,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게 되듯이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그런 것에나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그냥 긴 생각은 않으려 한다. 어차피 내 인생은 지금껏 내내 풍선효과 혹은 지나간 어느 유행가 가사대로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 일 벌렸다 하면 사고'인 나날의 연속이었으니까. 자른 머리도 보여줄 겸 봉안당에 올라가 그에게 경과보고를 하고, 한 고비는 넘겼는데 이제 뭘 어떡하면 되는 거지 하고 힘없이 웃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할 수 있는 건 그게 뭐든 다 이것저것 해보는 거지. 실제로 그는 몇 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마 저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산다는 건 원래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나날의 연속이니까.


best-balloons-900x400.jpe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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