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침대에는 이틀 전 저녁까지만 해도 한 겹 짜리 얇은 홑이불이 깔려 있었다. 나를 탓할 일은 아니다. 감히 이불을 바꿔야겠다는 엄두도 안 날 만큼 날씨가 더웠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그저께 밤이었다.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이제 자리에 좀 누우려다가, 아 과연 오늘 이 이불을 덮고 안 깨고 잘 잘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불과 하루이틀 전까지만 해도 더워서 선풍기를 틀어놓지 않고는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이젠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다만, 그렇다. 이불을 바꾼다는 것은 정도는 조금 약하나마 세간살이의 배치를 바꾸는 정도의 각오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다. 이불을 한 번 꺼낸다는 건 이제부터는 날씨가 어떻게 다시 뒤집어지더라도 이 이불을 계속 쓰겠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핸드폰 어플로 확인해 본 향후의 날씨는 최다 최저 온도가 18도 내외의 아주 '정상적인' 가을 날씨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냥 오늘쯤에 이불을 바꿔야겠다고.
바꾼 이불은 뭐 그리 두껍지도 않은 얇은 차렵이불이다. 봄에 잘 쓰고 빨아 넣어놓았던 것을 다시 꺼내 덮었더니 확실히 여름 이불의 깔깔함과는 다른 나름의 폭신함과 포근함이 있었다. 침대 옆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더니 서늘한 밤바람이 적당히 솔솔 들어와서 딱 잠들기 좋은 온도가 되었다. 그렇게 실로 얼마만인지 모르게 푹 잤다.
딱히 거창한 수면장애 같은 게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자다가 꽤 잘 깨는 편이다. 가장 피곤한 경우는 애매하게 기상 시간 한 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잠에서 깰 때인데, 일찍 일어나기에는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고 그렇다고 다시 잠들었다가는 늦잠을 자게 될 것이 대개 분명해서 잠든 것도 깬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한 시간 동안 뒤척이다가 마지못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날밤은 너무도, 그런 일 없이 아주 잘 잤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보태고 뺄 것도 없이 정확히 딱 일어나야 할 그 시간이었다. 다만 문제는, 여름에는 한 번도 들지 않던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이 실로 귀신같이 들어버렸다는 데 있다. 졸린다거나 더 자고 싶다거나가 아니라, 이불에 파묻혀 일어나고 싶지 않은 기분이 실로 몇 달 만에야 들어서, 나는 비로소 여름이 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슬슬 체온이 배어 따뜻해진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서 눈을 뜨고도 10분 이상을 꿈지럭거리는 계절이 저만치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다소 갑작스럽긴 하지만. 올해는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끝났다고, 그렇지만 뭐 도리 있냐고 말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