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면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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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추석 전 마지막으로 샀던 꽃은 몇 번 브런치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화훼시장 유찰꽃을 묶어서 파는 상품이었다. 대개 장미 몇 송이에 각각 다른 종류의 소국이 서너 송이, 거베라와 긴 소재 한대쯤이 섞여서 오지 않을까 예상했고 대충 맞았다.


연휴가 지나가고 날짜가 지나가면서 꽃들의 기세가 영 시들시들해진 바, 이제 또 슬슬 다른 꽃을 사야 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추석을 전후해 물류가 폭주한 탓인지 한동안 화훼 관련 상품이 열리지 않아 이번에는 인터넷으로 꽃을 사긴 힘들 것 같고, 간만에 자주 들르는 화원에 갔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한 발을 딱 들이자마자 쇼케이스 안에 꽂혀 있는 장미 중 한 종류가 '오늘 나 안 사가면 바보'라고 도발이라도 하듯 확 시선을 끌었다. 붉은색에 가까운 짙은 주황색 겉잎과 안으로 들어갈수록 색이 옅어지는 속잎을 가지고 있는, 마치 해 질 녘 노을을 잘라다가 잘 접어서 만든 것 같은 장미였다. 뭐 다른 꽃은 잘 살펴보지도 않고 사장님에게 저 장미로 몇 송이만 달라고 말씀드렸다.


집 근처 화원에서 사는 꽃은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사는 것만큼 싸진 않고, 그래서 같은 돈을 주고도 흡족할 만큼 장미를 많이 사 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집 근처 화원에서 사는 꽃은 어느 정도 '규격화'된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꽃과는 다르게 꽃을 떼어 오시는 사장님의 취향과 안목이 묻어나서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사는 꽃에 비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장미의 경우도 그간 인터넷으로 참 줄기차게도 샀지만 어제 사온 이 장미는 그 장미들과는 또 조금 다른 약간 프라이빗한 느낌이 있어 좋았다. 아무렴. 예쁘면 사야지. 사온 장미를 손질해 꽃병에 꽂아놓고, 적이 만족스러워 몇 번이나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사장님에게 장미의 이름을 미처 여쭤보지 못한 것이다. 말이 쉬워서 '장미'라고 하지만 장미는 가장 대중적인 꽃답게 셀 수도 없이 많은 품종이 있고 그 품종들마다 다 이름도 다르다. 이렇게 예쁜 장미이니 필시 그에 걸맞은 멋지고 예쁜 이름이 있을 텐데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이미지 검색을 해 보았지만 '장미'라는 뻔하디 뻔한 답이나 내놓는 것을 보고 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설마 이게 장미인 줄도 모르고 너한테 물어보겠니 하고 육성으로 짜증을 냈다. 글을 여기까지 써놓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무려 카톡으로 여쭤봤더니 에티오피아에서 들어오는 수입 장미로 이름은 '하이엔오렌지'라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아무리 AI가 어쩌니 뭐가 어쩌니 해도, 아직은 사람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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