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든 샴푸든, 무언가 '향긋한' 냄새가 필요한 제품에 가장 흔한 향 중의 하나가 '장미향'일 것이다. 향수라든가 섬유유연제라든가 디퓨저 같은 제품도 마찬가지다. 장미향이라는 건, 그냥 빨강이나 핑크 혹은 그 비슷한 어떤 색깔로만 표시되어 있어도 자동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보편적이고 흔한 향이다. 백합향이나 프리지아향, 코튼향 같은 말을 보면 한참이나 기억을 더듬어야 떠오르는 것과는 다르게.
나의 경우엔 장미향에 관한 좀 더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다. 요즘은 이런저런 이유로 스승의 날에 별다른 선물 같은 걸 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그날은 선생님께 소소한 선물을 드리는 것이 허용됐었다.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친구 하나가 선생님께 드리겠다고 장미향이 나는 향수를 가져왔는데 실수로 그걸 교실에서 깨뜨렸고 교실은 그야말로 장미향 범벅이 되었다. 나중엔 입 속에서 장미 맛이 느껴진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맡은 장미향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지금까지도 얼핏 기억이 날 정도니까.
아침에 일어나 이런저런 정리를 하느라 그의 책상 앞을 지나치면서 낯선 향기에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가 있다. 뭔가 매우 잘 아는 향인 듯도 한데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은근하며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향이었다. 혹시나 싶어 며칠 전 사온 장미에 코를 대보니 그 장미에서 나는 향이었다. 내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꽃은 덜 피었을 때는 별로 향도 나지 않는다. 꽃의 향이 짙어지는 건 활짝 핀 것을 조금 지나서, 이제 슬슬 꽃의 생명력이 바닥을 향해 갈 때쯤부터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고작 다섯 송이 남짓 꽂아놓은 꽃병 주변으로 은은한 장미향이 저절로 발이 멈추어질 만큼 짙게 나고 있었다. 인공향 특유의 톡 쏘는 느낌도 없고 어딘가 물리는 기분도 들지 않는 그 향은 내가 기억하는 그 어떤 장미향과도 같지 않아서, 새삼 인간이 아무리 흉내를 내서 만들어봤자 진짜의 그것과는 같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대모사를 감쪽같이 잘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들을 때는 손뼉을 치며 웃다가도, 나중에 진짜의 목소리와 비교해서 들어보면 어딘가 다른 것처럼. 사람의 '향'에 집착해 아름다운 여자들을 죽이고 그 시체에서 향을 뽑아낸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도 있지만, 이런 향을 똑같이 재현해 소유하고 싶다는 건 인간의 당연한 욕구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향이 이렇게까지 짙어진 것을 보니 이 곱고 예쁜 장미도 며칠 내로 수명을 다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씁쓸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꽃잎이 벌어진 모양이나 고개가 젖혀진 각도를 보니 내일쯤부터는 슬슬 한 송이씩 떠나가겠구나 싶기도 하다.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어도 괜히 그의 책상 근처를 어슬렁거리면서, 진짜 장미향이나 실컷 맡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