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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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한동안 '쿡방'이 굉장히 인기이던 때가 있었다. 그도 나도 꽤 열심히 봤고, 그중 몇몇 레시피는 집에서 따라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름을 알게 된 몇몇 셰프의 업장에는 일부러 방문해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우리만 그랬던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좀 시들한가 싶던 그 쿡방 중에 요즘 좀 핫한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은 프로그램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출연자들이 다 같은 요식업 전문가들인데 남자 출연자들은 '셰프님'이라고 부르면서 여자 출연자들은 왜 '이모님' '어머님' 등으로 부르느냐 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그냥 한국 사회 어디에서나 통하는 친근감의 표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왜 여성 출연자들 한정이어야 하며, 여성 출연자들 또한 요식업에서 오래 종사한 전문가들인데 왜 그 전문성을 무시하고 친밀감만을 강조하려고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어제 외근 나갈 일이 있어 거리를 돌아다니던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에 보드를 갖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스티커 붙이기를 유도한 후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기부를 받는 사람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앞을 지나가며 내게도 스티커 붙이라는 권유를 하겠구나 정도로는 생각했다. 그러나 반응이 훨씬 크게 왔다. 깜짝 놀랄 만큼 우렁찬 목소리가 '어머님!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시고 가세요!'하고 소리를 쳤다. 그 순간 느껴진 것은 불쾌감이라기보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이었다. 나는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핑계 삼아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 순간 느낀 당혹감은 꽤나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아줌마'라는 호칭은 좀 씁쓸은 할지언정 큰 거부감은 없다. 그 씁쓸하다는 감정조차도 아마 내가 평범한 결혼생활을 거쳐 아이를 낳아 키웠다면 지금쯤에는 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저 나도 벌써 이렇게나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사실에 대한 좀 때늦은 자각에 가까운 느낌일 뿐이다. 50을 목전에 두고 있는 중년의 여자를 아줌마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겠는가.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한들 그 씁쓸한 기분이 들지 않을 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이 되면 좀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내 속으로 열 달을 품어 세상에 내놓은 생명이 한 명도 없고, 그런 처지에 누군가에게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것이 몹시 당혹스러웠다. 물론 내 사정 따위 알 리 없는 입장에서야 대충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여자를 부를 만한 마땅한 호칭(아줌마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상대에게 그다지 공손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니까)을 찾지 못해서 그렇게 불렀을 뿐이겠지만.


그럼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이 나를 뭐라고 불렀으면 그래도 '당혹스럽지'는 않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도 특별한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서양 식의 '멤' 같은, 두루두루 쓸법한 무난한 존칭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관공서 민원창구에서 흔히 쓰는 '선생님' 정도면 무난했을까? 내가 좀 유난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또 생각하기 따라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 하나만일 것 같지는 않기도 하다. 일개 평범한 중년 여자인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글의 첫머리에 썼던 저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분들에게는 그 경력에 맞는 호칭을 똑바로 써드리는 게 맞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새삼 했다. 그분들은 '전문가'로서 그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것이지 누구네 어머니나 이모로 나가시는 것은 아니실 것이기 때문에.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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