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게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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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때아닌 치즈 든 게맛살로 인해 한바탕 가벼운 멘붕을 겪은 이야기는 이미 했으니, 오늘의 이야기는 이를테면 그 2부 격이다. 그래서 과연 치즈 든 게맛살로 게살 스프를 끓여 먹으면 그 맛은 어떠한가? 에 대한 해답편 아닌 해답편이기도 하다.


어쩌긴 뭘 어쩌냐고, 그냥 치즈 들어간 게살 스프 먹는 거지 하고 대승적으로 생각은 했지만 뭔가가 영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괜히 치즈 든 게맛살로 게살 스프 끓여드시는 분이 나 말고도 또 계신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이미 몇 번 말한 것 같지만 인터넷의 가장 큰 효용 중에 하나는 '이렇게 한심한 짓을 하는 인간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주는 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에.


결과적으로 치즈 든 게맛살로 게살 스프를 끓여드신 동지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치즈게살죽' 레시피를 찾았다. 물론 이 레시피는 식은 밥으로 흔히 할 수 있는 죽 요리에 게맛살을 넣고 막판에 치즈를 따로 한 장 정도 넣는 식이었지만 어쨌든 '치즈'와 '게맛살'을 함께 공식적으로 쓰는 레시피라는 점에 대단히 마음이 끌렸다. 일단 이거면 더 이상 나의 부주의와 덤벙거림을 탓하지 않아도 되고, 맛이 괜찮으면 식은 밥으로 해 먹을 수 있는 레시피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던지.


식은 밥으로 죽 끓이는 방법은 나도 별다른 레시피를 보지 않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준비한 야채를 적당히 썰어서 볶고, 웬만큼 익었다 싶으면 물 5, 600ml 정도를 붓고 식은 밥을 넣고 푹 퍼지도록 끓인다. 그 위에 참치나 게맛살 등 오늘의 '메인 재료'를 넣으면 끝이다. 나의 경우는 남겨둔 라면스프도 조금 넣고 마지막쯤엔 계란도 하나 풀어서 먹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뭔가 꽤 든든하게 한 끼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렇게 끓여 먹은 게살죽은 상당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죽을 끓일 때 대개 참치를 넣었는데 참치보다도 훨씬 맛이 깔끔하고 비린 느낌도 덜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참치를 넣어 먹을 생각은 하면서 왜 게맛살 넣어먹을 생각을 진작에 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맛이었다. 이래서 뭐, 몇 개월 만에 게실 스프나 끓여 먹으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덕분에 또 만만하게 만들어먹을 수 있는 레시피 하나가 생겼으니 경상도 어른들이 잘 쓰시는 일본말로 '똔똔'인 셈이다. 세상엔 원래 공짜가 없고,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것만큼이나 잃는 게 있으면 얻게 되는 것도 있고 뭐 그런 건가 보다.


60d861d53f9426bed81b3ce7326b2c6f1.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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