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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04. 2024

담배자국

-311

그는 꽤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다. 본인의 말로는 고등학교 부터 피웠다고 했으니 얼추 30년 넘게 피웠던 셈이다. 그런 식으로 갑자기 내 곁을 떠나가기 1년쯤 전, 그는 소리소문 없이 담배를 끊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쯤엔 아마 담배를 계속 피우다가는 더 버텨내지 못할 것 같다는 어떤 느낌이 있었던 게 아닌가도 싶다.


나는 원래도 그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긴 했다. 그중에서도 담배 가지고 잔소리를 한 기억은 그를 알고 지낸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이가 있었다면 좀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도 아닌 바에야 내가 커피를 좋아하듯 그는 담배를 좋아하는 거고 어차피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공기를 나눠마시고 사는 사이에 간접흡연 운운 하는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 딱히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거기에는 그가 자신의 담배에 관한 것들, 재떨이라든가 담배꽁초라든가를 워낙 깔끔하게 알아서 잘 처리하고 한 번도 내 손을 거치게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담배자국이다. 가끔 피곤한 날, 잠을 깨려고 담배 한 대를 물고 뭔가 생각에 잠기거나 하다가 그대로 깜빡 졸아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담배가 힘이 빠진 손에서 굴러 떨어져 장판이나 이불이나 옷 등에 그을린 자국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얇은 옷 같은 경우에는 구멍이 뚫리는 일도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는 몹시 멋쩍어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별로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다가 살에 꽁초가 닿거나 해서 데이면 어쩌냐는 말 한마디 정도를 했을 뿐이다. 구멍이 난 옷에는 와펜 같은 것을 사다가 기웠고 바닥에 난 그을린 흔적은 털털하다 못해 무딘 내 성격답게 뭐 어쩌겠나 하고 대충 보아 넘겼다.


어제 아침 일어나 침대에 깔린 침구를 싹 걷어내고 다시 깔다가 토퍼에 나 있는 담배 구멍을 발견했다. 몰랐던 것은 아니고, 아는 구멍이다. 우리 집에는 총 세 군데의 담배 자국이 남아 있다. 하나는 이 토퍼에, 하나는 그의 책상 아래 바닥 장판에, 하나는 옷장 속에 걸려 있는 그의 스웨터 한 군데에. 그 심란한 흔적들이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라는 사람이 내 곁에 살고 있었다는 하나의 증명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퍽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 자국들이 생길 때마다 잔소리를 하고 짜증을 내지 않은 나 자신이 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아니다. 내가 담배 피우는 문제로 조금 더 잔소리를 하고 싫은 기색을 했더라면. 그래서 조금 더 일찍 담배를 끊게 했더라면 그는 그런 식으로 내 곁을 떠나가지 않았을까. 아직도 정답을 잘 모르겠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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