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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서는 하지 않던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낮잠이었다. 나는 잠을 그리 적게 자지는 않는 대신에, 일단 일어나면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눕기 전까지는 몸이 아프다거나 하지 않은 이상 어지간하면 눈을 붙이지 않는(차를 오래 타야 할 일이 생긴다거나 하면 차 안에서 잠깐 조는 것 정도를 빼면) 성격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해가 있는 동안에 자는 게 뭔가 아까워서였다. 어차피 밤이 되면 할 수 있는 거라곤 자는 것뿐인데 잠은 그때 자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낮시간은 어지간하면 안 자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휴일에 망중한을 즐기다가 깜빡 낮잠 한숨 자고 나면 내내 그 낮잠 잔 시간이 아깝고 억울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 금쪽같은 휴일에, 뭘 해도 할 수 있는 낮 시간에 외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밀린 빨래나 청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낮잠이라니. 그래서 어쩌다가 낮잠 한숨 자고 난 휴일은 남은 날 내내 입이 한 발이나 튀어나와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앞서의 두 문단이 죄다 과거형에서 서술된 것에서 이미 눈치를 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게 나이를 먹고 나니 오후 두 시쯤 잠깐 눈을 붙이는 낮잠의 유혹은 어지간해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쪽잠을 좀 자고 나면 컨디션도 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고 복잡하던 머리 속도 재부팅을 한 듯 초기화되는 느낌도 있다. 물론 이것 또한 내가 회사에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사치이기는 할 것이다.
어쨌거나 쉬는 날이고, 책을 읽든 vod로 뭔가 재미난 영화 같은 것을 보든 웬만해서는 자는 것으로 휴일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같이 날씨가 좋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정 할 일이 없으면 후딱 옷을 갈아입고 집 근처를 한 바퀴 빙 돌며 한참 좋은 볕도 좀 쬐고 모자란 운동량도 채우든지 할 일이지 뜻없이 낮잠이나 자는 걸로 이 피 같은 휴일을 소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만 그럴 뿐이고, 나는 어제도 오후 세 시쯤 의자를 뒤로 젖혀놓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30분쯤 후에야 깼다. 그리고 못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쓰디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뭐, 좀 그러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휴일'이니까. 책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그냥 내 몸이 그 순간 제일 원한 것은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인 모양이었나 보다고, 그냥 적당히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어차피 휴일인데 안될 건 또 뭐겠는지. 어차피 산다는 건 죽어도 그러면 안 되는 일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순간의 연속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