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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Oct 09. 2024

10월의 모기향

-316

에어컨이든 선풍기든 둘 중 하나가 없이는 밤에 잠을 못 이루던 게 불과 20여 일 전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나는 홑이불을 집어넣고 차렵이불을 꺼냈고 침대에 면한 창문을 열어놓고 자던 것도 이제는 하지 않게 되었다. 창문을 꼭꼭 닫고 블라인드까지 내리고서도, 이불 한 번 걷어차지 않고 아침까지 잘 자고 일어나는 걸 보면 정말로 이제부터는 쭉쭉 서늘해질 일만 남은 모양이다.


새벽 한 시가 좀 지난 시간까지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이제 오늘 하루 마무리하고 자리에 눕자 하고 자리에 누웠다. 물론 이런다고 바로 잠들진 못하고, 또 짧으면 30분 길면 한 시간 정도 핸드폰을 만지작대다가 잠든다. 그렇게 한참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다가 팔뚝 언저리가 이상하게 근질거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더듬어보니 손톱만 하게 불거진 자국이 만져졌다. 문제는, 한 군데가 아니었다. 팔에만도 두세 군데 정도 물린 데가 있었고 종아리 어딘가도 좀 근질근질한 느낌이 났다. 아, 모긴가.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그래 뭐, 너도 먹고 살아야지 하는 대승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힘껏 모르는 척하려는 순간.


귓전에 애앵, 하고 모기 소리가 났다.


순간 벌에라도 쏘인 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억지로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짜증이 한꺼번에 폭발해, 나는 '철도 모르고 사람 물러 다니는 이 미친 해충'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침대 아래로 내려와 불을 켰다. 물론 나는 모기가 있다고 그 모기를 잡기 전까지는 못 잘 정도의 철두철미한 사람은 되지 못하기 때문에 1년 이상 처박아 두었던 모기향 훈증기를 꺼내 카트리지를 물리고 스위치를 올려두고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세상에 한여름에도 안 꺼낸 모기향을 10월에 꺼낸다는 게 말이냐는 투덜거림과 함께.


요즘 모기는 철도 모르고 한겨울까지 나온다고 해서 '사철모기'라는 소리를 들은 지는 좀 된 것 같다. 그런데 심지어는 그것도 모자라서, 요 몇 년 새 여름이 비정상적으로 덥다 보니 모기도 한여름을 피해 조금 선선해지는 가을 무렵으로 주 활동 시기를 옮겼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보고 한참 헛웃음을 웃었다. 그래서 뭐, 당분간은 한여름에도 안 쓰던 모기향을 밤마다 틀어놓고 자야 하게 생겼다는 그런 이야기다. 대신에 여름은 공짜로 지나가지 않았느냐고 하기에는, 여름에는 어차피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고 자니 모기가 있어도 달려들지 못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그런 게 뭐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오늘부터는 자리에 누웠다가 괜한 짜증을 내며 일어나지 말고, 자기에 눕기 전에 미리미리 모기향을 켜놓고 누울 수밖에.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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