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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밤의 그 기습계엄 사건 이후로 아침에 눈을 뜨면 더듬더듬 핸드폰을 켜서 밤새 무슨 일이 있지나 않았는지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 난리법석에 가까운 새벽이 지나간 후 이틀 정도는 좀 소강상태였던 것 같다. 하기야 뭐, 이렇게 다 수포로 돌아갔으니 별 일이야 있겠나 하고 생각했다. 7일에 있다는 탄핵 표결이 중요하겠구나 정도의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니. 살면서 대통령 탄핵이 올라가는 걸 세 번째 보고, 그중 두 번이나 가결되는 꼴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이런 역사의 증인 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나 그런 나의 다소 나이브한 생각은 어제 10시를 조금 지나면서 슬슬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2차 계엄 징후가 있다'. 듣기만 해도 섬짓한 이 말이 틀어놓은 뉴스를 타고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 누구누구가 양심선언을 했다는 뉴스, 새로 이러저러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뉴스, 게다가 계엄군 국회 진입 시의 긴박한 순간들을 촬영한 영상까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니까, 그날 밤에 저런 짓을 해놓고 그게 막히니까 또 하겠다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귀로는 뉴스를 듣고 손으로는 SNS와 카페 게시판을 새로고침하고 가끔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을 돌리기만을 반복하며 어제 하루를 꼬박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밥도 먹지 않고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황황히 주방으로 가서 마침 남아있는 식은 밥에 감사하며 라면을 하나 끓여 왔다. 뭘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른 채로 라면에 만 밥을 대충 먹어치우고 건성건성 설거지를 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아 뉴스만 하루 종일 봤다. 뉴스의 내용은 대개 거기서 거기였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나오는 소스는 정해져 있고 그에 비해 하루 종일 뉴스 속보만 방송하고 있으니 한 번 한 말을 사람만 바꿔가며 재탕삼탕하는 것은 도리 없는 일일 터였다. 그러다가 간간히 화면 아래 자막으로 속보가 타진되었고 나는 그 속보에 더러는 탄식하고 더러는 울화통을 터트리면서 어제 하루를 보냈다.
점심은 늘 먹던 시간보다 두 시간 가까이나 늦었고 그나마도 매우 부실했는데도 어제는 하루 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후 대여섯 시쯤 되면 들던 뭘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덕분인지 오늘 아침 재 본 내 몸무게는 근 몇 달 사이 최저 수치를 찍었다. 오늘이라 해서 별로 다를 것 같진 않다. 난 아마도 혹시나 또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는지 뉴스만 쳐다보며 하루를 다 보낼 것이고, 표결 결과에 따라 역시나 방향은 다르겠지만 잔뜩 흥분된 채로 남은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덕분에 며칠 새 살이 쏙 빠진 것은 고맙지만, 사실 별로 안 고맙다. 내 몸무게는 내가 알아서 하니까, 가뜩이나 바쁘신 분들이 일개 국민의 몸무게 따위에는 신경 안 써주셔도 되니까 제발 이런 일 좀 생기지 않았으면 하고 부탁이라도 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