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처음 산 꽃은 짙은 자주색이 나는 미니장미였다. 애용하던 인터넷 판매가 연말부터 내내 열리기 않아 간만에 동네 꽃집에 가서 긴히 사 왔다. 그다지 마음에는 차지 않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졸업 시즌이라 꽃값은 그야말로 금값이고 그나마 구색도 그리 많지 않았다. 미니장미가 아닌 보통 장미는 한 송이 5천 원씩이라는 사장님 말씀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요 때가 꽃집은 대목이잖아요 하는 말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어림없다는 투로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요 무렵 꽃값이 비싼 게 소매에서 나가는 값만 비싼 게 아니고 도매로 떼오는 가격도 비싸요. 그래서 사실 마진은 보통때보다 훨씬 안 남아요. 그런데 꽃 찾는 사람은 많으니 그 손님 안 받을 수도 없고 죽을 맛이라고 사장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5월 초 어버이날 무렵도 그러냐고 물어봣더니 한참이나 손사레를 치시고는 해마다 그 무렵이 제일 빛 좋은 개살구라고 했다. 5월 무렵에 도매 시장 가보면 사장님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돈은 안 벌려서 얼굴들이 다들 시커멓다던가.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네요. 그런 인사를 하고는 사온 미니장미를 손질해 꽃병에 꽂아두었다.
그러던 장미가 주말을 지나면서 급속히 시들기 시작해서 이제 슬슬 새 꽃을 사와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장미가 슬슬 시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괜히 몸이 달아 하루에도 몇 번식 혹시나 판매 안 열렸나 검색을 해 보던 것도 요즘은 하지 않고 있다. 급작스레 날씨가 추워져 배송 문제도 있을 테고, 이렇든 저렇든 졸업식 많은 요즘은 대목일 테니 인터넷으로 파는 것보다 그냥 소매로 내가는 게 낫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동네에서 적당한 꽃을 사서 며칠 꽂아두기로 했다.
지난 번에 갔던 동네 꽃집 말고, 마트의 화훼 코너에 가 봤다. 꽃값이 비싼 철이긴 한 모양인지 장미 한 송이에 안개꽃 한 줌을 섞은, 평소때 팔던 것의 절반이나 겨우 될까 하는 꽃 한 다발이 5천 원에 팔리고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괜히 이꽃저꽃을 두리번거리다가 구석에 꽂혀 있는 왁스플라워를 발견했다. 마치 소나무 같은 이파리에 작고 하얀 꽃이 몽글몽글하게 피는 이 꽃은, 오래전에 한 번 사다 꽂아본 적이 있는데 꽃대가 그야말로 '줄기'가 아니라 '나무둥치' 같은 목질이어서 아침마다 꽃대를 다듬을 때 잘 잘라지지 않아 애를 먹고는 그 후로는 웬만해서 안 사오고 있는 꽃이었다. 그 때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심지어 빨간 색으로 흰 꽃을 물들여놓기까지 해서 좀 더 손이 가지 않았다) 장미 한 송이에 안개꽃 한 줌으로 도배된 다른 꽃다발보다는 그래도 이 편이 나을 것 같아 눈을 딱 감고 한 다발 사 왔다. 역시나 왁스플라워의 줄기는 가위로 잘 잘라지지 않을 만큼 딱딱하고 두꺼워서 꽃대를 손질하느라 애를 좀 억긴 했다.
언제나 모든 게 내 맘 같을 수는 없다. 가끔은 이렇게, 더러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을 하고 그 순간을 지나 더 나은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게 마련일 테니까. 사람이 인위적으로 물들인 꽃은 절대로 안 산다는 게 나름의 신조이긴 했는데, 빨갛게 물들인 왁스 플라워는 또 무협지에나 나오는 붉은 매화 같은 느낌이라 나름의 운치가 있는 듯도 하다. 이렇게 우리 집에 데려오게 된 것도 인연이니 있는 동안은 괜히 투덜거려 눈칫밥 주지 말고, 잘 지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