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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마실 겸 이것저것 물건을 사러 갔다가, 집에 이미 사놓은 된장이 있는 것을 깜빡하고 또 된장을 사 와서 재 놓은 된장만 두 통이 되었더라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쓴 기억이 있는 것 같다. 이 뒷손 없는 버르장머리를 어떡하면 좋을까 하는 푸념과 함께.
오랜만에 칼칼한 된장찌개 생각이 나서 끓여 먹기로 했다. 더 좋은 것은 드디어 그 두 통 중에 한 통을 뜯어서 쓸 찬스가 왔다는 사실이었다. 된장은 대개 뜯기 전에는 실온에 보관해도 되고 그 소비 기한도 1년 가까이로 매우 긴 물건이긴 하지만 그래도 두 통씩이나 재놓고 있는 것은 역시 신경이 쓰이던 중이었다. 이제 한 통을 쓰고 한 통은 여분 삼아 재 놓으면 될 테니 딱 맞을 참이었다.
받아놓은 쌀뜨물까지 붓고, 썰어놓은 야채를 넣고 끓는 동안 된장과 고추장을 미리 몇 숟가락씩 떠서 끓고 있는 육수를 조금 섞어 풀어서 붓고, 마지막으로 썰어놓은 두부를 넣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된장찌개가 될 참이었다. 먼저 고추장을 두어 숟갈 떠 놓고 새 된장을 꺼냈다. 두 통 중 소비기한이 먼저 종료되는 것으로(그래봤자 올해 5월까지라 꽤 넉넉하게 남긴 했다) 꺼내 비인 포장을 뜯고 뚜껑을 연 나는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냉장고에 넣지 않았다 뿐이지 볕 안 드는 서늘한 곳에 잘 두었는데도 포장을 뜯어본 된장은 이게 된장인지 춘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어딘가 몹시 기분 나쁜 냄새도 났다. 이게 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저런 걸 넣고 끓인 찌개를 도저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비위가 머리끝까지 상한 채로 손도 대보지 않은 새 된장 하나를 그대로 긁어내서 버리고, 얼마 전 사온 두 번째 된장을 뜯어 그걸로 찌개를 끓였다.
막연하게, 된장은 발효실품이라 포장을 뜯기 전까지는 실온에 두어도 괜찮다고만 알고 있던 터라 오늘 받은 충격은 꽤 오래갈 듯싶다. 그러게 된장을 두 통이나 사다 재 놓지 말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아니 그런데 이번 일은 마냥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좀 억울하지 않냐고, 부주의해서 나중에 사 온 된장을 먼저 먹는다든지 해서 먼저 사온 된장의 소비기한을 넘겼다거나 한 거라면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하지만 이번엔 앞에 먹던 된장 다 먹고 "순서대로" 뜯었는데도 그렇게 돼 있었는데, 심지어 소비기한도 다섯 달이나 남았는데도 그렇게 돼 있었던 걸 나더러 뭐 어쩌란 말이냐고 괜히 억울해져 한참이나 시무룩해져 있었다. 아무튼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실온 보관'을 해도 된다는 식재료들도 마냥 안심 턱 놓고 있어서 될 일은 아니라는 사실만 오늘 된장 한 통 값을 수업료로 치러가며 배운 기분이다. 이젠 정말로, 아무리 마트에서 할인을 해 싸게 팔아도 냉장고에 든 된장 절반 이상 먹기 전까지는 절대로 새 된장 같은 건 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