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팸이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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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 너의 지인 아무개인데 지금 공항이니 데리러 와 달라는 스팸 메시지를 받아본 경험이 아마 한두 번쯤은 다들 있으실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숫제 발신번호 자릿수부터가 수상쩍은 전화나 메시지는 내용을 잘 읽어보지도 않고 차단부터 하는 버릇이 생긴 지가 제법 오래다.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마쳐 놓고 연휴 전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마무리하고 있는 중에 느닷없는 국제발신 문제가 왔다. SF 택배인데 오늘 물건이 배송될 예정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카드가 결제되었느니 배달될 택배가 있느니 하는 것 또한 지극히 고전적인 피싱 수법으로 알고 있는 바, 나는 코웃음을 치며 메시지를 과감히 스팸 등록해 버렸다.


한 시간쯤 지나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연속 두 통이 걸려왔다. 요즘 워낙 여론조사니 뭐니 하는 달갑지 않은 전화들이 자주 오는 바, 받지 않았다. 잠시 후 같은 번호에서 문자 한 통에 들어왔다. 현관문 앞에 놓인 택배 박스를 찍은 사진이었다. 전화 안 받으셔서 현관 앞에 두고 간다고, 그런데 다음부터는 연락 안 되시면 반송처리 한다는 말이 남겨져 있었다. 세상에나. 아침에 스팸 등록 해버린 그 메시지가 눈앞에 스쳐갔다. SF 택배는 중국에 계시는 지인분이 가끔 이런저런 것들을 보내주실 때 주로 이용하는 택배이긴 한데 보통 세관을 통과할 때 관세를 내라거나 하는 연락이 오기 때문에 뭘 또 보내셨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허둥지둥 현관으로 나가 택배를 챙겨 왔다. 그리고 기사님의 문자에 답문제를 보내 배송 잘 받았고 전화 못 받아 죄송하다는 사과말씀을 드렸다.


보송보송한 캐시미어 가디건과 숄, '천공의 성 라퓨타'의 '너를 태우고'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토끼 모양 오르골 인형 등등이 들어있었다. 지인 분께 메시지를 보내 선물 잘 받았고 모르는 번호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가 택배 기사님께 혼났다는 이야기도 했다. 순풍(SF) 택배 기사가 그렇게 터프하냐고 놀라시기에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매우 급해서 택배 기사분들은 늘 바쁘고, 그러니 오늘 전화를 제때 받지 않은 것은 제 잘못이 맞다는 대답을 해 드렸다.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스팸 등록했던 SF 택배의 전화번호를 슬그머니 차단 해제했다. 007 등등으로 시작하는 해외 번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단했는데, 뭐 가끔은 이런 일도 있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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