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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당일 배송이라는 걸 처음 본 건 지금은 많이 규모가 커진 한 쇼핑몰에서였다. 다 되는 것도 아니었고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어있긴 했지만 밤 11시 안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 안에 문 앞에 칼같이 배송 와 있는 것이 몹시 신기하긴 했다. 그래서 그가 있을 땐 빵이니 밀키트니 하는 것도 꽤 곧잘 시켜다 먹곤 했다.
튤립은 생명력이 그리 긴 꽃이 아니다. 지금껏 산 튤립들은 죄다 줄기는 멀쩡하던 중에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으로 끝을 맞았는데 이번 튤립은 이상하게 자꾸 줄기가 꺾여 허리를 숙이곤 했다. 열 송이 중에 네 송이가 그런 식으로 허리가 꺾였고 남은 여섯 송이 또한 그렇지는 않으나마 점점 꽃잎의 색깔이 탁해지고 생기를 잃어가는 것이 끝이 가까워 오는 것이 여실하게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연휴 기간이라 꽃을 살 방법이 마땅찮다는 것이었다. 집 근처 꽃집들은 당연히 문을 닫았고 자주 꽃을 주문하는 온라인 판매 또한 당연히 열리지 않은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제부터는 눈이 내리기 시작해 이 날씨에 차도 없이 밖에 나가 꽃을 사 온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저 쇼핑몰이 사업 규모를 확장하면서 꽃도 배달해 주던 것이 생각났다.
역시나 그랬다. 가격이 비싼 '꽃다발'들은 아니었지만 집에 꽂아놓는 용도로 주문하는 다발꽃은 쇼핑몰에서 취급하는 다른 물건들과 똑같이 11시 안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 안에 배송된다는 친절한 안내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는 명절연휴인 지금도 배송이 안 되는 날은 설날 당일 하루뿐이라는 모양이었다. 최소 배송 금액을 맞추기 위해 3천 원 정도 하는 버터 쿠키 한 팩을 같이 주문하고 이로서 튤립을 보내줘도 되겠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그렇다. 주 7일 배송 운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뭐 그렇게까지? 하는 글을 브런치에 쓴 것이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또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수고에 빌붙어 내 편의를 채우는 선택을 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대개 비슷할 것이다. 누군가를 부려먹어야만 속이 시원하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못된' 사람들은 그리 흔하지는 않다. 그냥 내가 불편하니까, 내가 조금 더 편하고 싶으니까 다른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해지는 쪽으로 세상은 굴러가 버리는 게 아닐까. 뭐든 참 말은 쉽구나. 그런 생각 끝에 며칠 전에 쓴 글이 조금 민망해졌다.
이번에 주문한 꽃은 랜덤으로 배송된다는 미니장미다. 그 꽃이 피어있는 동안 좀 더 많은 생각을 해봐야겠다. 사려 깊은 사람이란 무엇이며, 또 어떡하면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