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설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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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죽어도 눈 안 오는' 부산에 살던 시절에는 윗동네는 겨울 내내 눈이 오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여름에 비 오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빈도로 눈이 오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와서 살아보니 '폭설'이라고 할 만한 눈은 겨울 한 번당 두세 번 정도인 것 같고 나머지는 다음날 아침이면 적당히 녹을 정도의 눈이 종종 내리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


올해는 그런 폭설 중 한 번이 무려 첫눈 오는 날 왔고, 그중 또 한 번이 이번 연휴 중에 온 모양이다. 처음엔 동화 속의 나오는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백설기 가루를 뿌리듯 솔솔 내리는 정도더니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보니 창틀 앞에 무슨 북유럽 계통의 동화에 나오는 집처럼 유리가 가려질 정도로 눈이 쌓여 있어서 식겁을 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이런저런 준비를 해 둬서 집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망정이지,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은 참 쉬지도 않고 줄기차게도 왔다. 차라도 가지고 고향길 나서신 분들은 정말로 고생하시겠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눈과 비는 따뜻한 내 방에 앉아 창밖으로 '감상'할 때나 즐거운 것이지 직접 그 속을 뚫고 어딘가로 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지없는 고역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런 나의 음풍농월은 어제까지로 끝나고, 오늘은 어제까지 잔뜩 내린 눈이 아마도 꽁꽁 얼어붙어 있을 이 길을 걸어 그의 봉안당에 인사라도 하러 가봐야 한다.


사실 굳이 오늘일 필요는 없다. 당장 31일에 연휴 때문에 못 한 미팅 때문에 거래처에 가봐야 하고, 그다음 주부터는 또 늘 그래왔듯 월요일마다 미팅이 잡혀 있다. 29일이나 31일이나 그게 그거고, 이렇게 춥고 길도 엉망인데 이틀 정도 있다가 온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틀 다 꾸역꾸역 오면 왜 그렇게 요령 없고 미련하냐고 오히려 싫은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워낙에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데 또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다. 마주 보고 앉아 떡국 한 그릇 먹지도 못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는데, 근처에 계신 다른 분들의 가족들이 다 설이라고 얼굴을 비치고 가는 중에 혼자 아무도 찾지 않는 채로 내버려 두고 싶지가 않다. 오늘은 아마 봉안당을 찾는 사람이 많을 테고 평일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넋두리도 하기가 힘들어 가져간 꽃이나 올려두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짧은 인사나 남기고 나오는 것이 고적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또, 이젠 음력 핑계조차 댈 수 없는 새해가 밝았다. 이젠 그도 그곳에서 웬만큼 자리를 잡았겠지만, 그래도 부디 거기서라도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고, 나 너무 까맣게 잊어버리지는 말라고 그런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돌아와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난 올해도 이런저런 일을 당신에게 싸들고 와 어떡하면 좋으냐고 한없이 징징거리게 될 것 같으니 미리 미안하다는 말도 함께 좀 해 두고.


20220128110916_1713516_600_450.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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