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죽을병도 아닌데.
2023년 10월 6일.
큰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았다.
ADHD는 텔레비전에서 많이 봐서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도 혹시 그런 친구가 아닌가 의심이 되는 학생이 더러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진단을 받은 사람을, 학생을 내 주변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 익숙하지만 흔하지는 않은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ADHD 의심이 아니라 진단을 받았다.
보통 ADHD는 충동성이 높고, 과도하게 흥분해서 행동이 과격해 통제가 되지 않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게 텔레비전에서 접한 대부분의 ADHD 아이들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런데 우리 아이는 행동이 과격하거나 와일드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심했고 불안이 높아서 조심하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거나 뺏지 않았고, 혼자 앉아서 조용히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쪽에 가까웠다. 산만하기도 했지만 7세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처럼 산만한 정도라고, 산만함이 크게 문제가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는 조용한 ADHD라고 했다.
ADHD에 '조용한'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조용한'이 붙은 ADHD는 도대체 무엇인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고 모르겠는데 또 알겠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아이의 진단은 내 모든 것을 흔들어 버렸다. 진단 후 2주 정도는 가만히 있다가도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나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막막함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범벅이 되어서 잠든 아이만 봐도 안쓰러웠다. 신랑도 자기를 닮은 것 같다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들추어 스스로를 괴롭혔다.
의사는 우리에게 약처방을 권했고 얼결에 약을 받아온 우리 부부는 당장 이 약을 먹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에 놓여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그래, 괜찮다. 약을 먹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약을 먹었을 때의 알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고, 그냥 약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올라왔다. 몰랐을 수도 있는데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또 몰랐으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ADHD임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의 ADHD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게 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답을 찾은 것도 아니다. 계속해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아이를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 노력의 과정을 우리 부부는 약 없이 해보기로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반년까지 우리는 우리와 아이에게 유예의 시간을 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한 달, 엄청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한 번씩 울컥하고 대상도 없이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가는 루틴에 적응이 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이라는 희망을 한 번씩 싹 틔우기도 한다.
사실 죽을병도 아닌데.
아이가, 자식이 아플 때만큼 부모가 겸손해지는 순간이 있을까? 세상에게 가장 겸손해질 때가 자식이 아플 때이다. 그렇게 귀한 자식이 죽을병도 아닌데, 이게 뭐 대수라고.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라고 어떤 날은 그렇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괜찮다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그런데 사실 안 괜찮다. 이 아이러니한 말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말이다. 세상이 무너져 다시 일으킬 수 없을 것 같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 일상은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문득 마주하는 ADHD라는 현실은 넘기 어려운 벽을 마주한 것처럼 버겁다.
매일 나는 괜찮은데 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