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데 남다르네요.

장점인 줄 알았습니다.

by 어떤사람

지금 돌이켜 보면, 지극히 순한 아이였다. 다만 내가 서툴렀을 뿐.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순한 아이지만 남다른 아이였던 것도 분명하다. 내가 무지했을 뿐.


결혼 후 1년 반 만에 임신 사실을 알고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했다. 아이를 만나기 전, 만삭까지도, 나는 그저 아이들의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 떠올리는 낭만가였다. 조리원에 있을 때는 또 어땠던가. 아이는 늘 잘 먹고 잘 자는 아기 천사였다. 그러나 이후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초보 엄마는 도망치고 싶을 만큼 서툴렀다.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이 기본적인 일이 너무 버거웠고, 내 계획에서 벗어나는 모든 일(아기와 관련해서 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신랑에게 나는 육아가 체질이 아니라는 말을 꾸준하게 하는데, 나는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사실 모성애가 넘쳐흐르는 것 같지도 않았고 아기와 둘이 남겨지는 상황이 내게는 극심한 두려움이었고 버거움이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무서웠다. 나는 내가 너무 소중했고 왜 육아는 여성의 몫이어야 하는가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기에 출산 휴가 90일 이후 복직을 선택했고, 아이는 동네 이모님께 맡겼다. 다행히 정말 좋은 이모님을 만나서 아이는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고 나의 무지와 상관없이 잘 자라주었다.


처음이라서 모든 것이 서투르고, 잘 몰라서 나는 우리 아이가 예민하고 키우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순했다.


내가 일어나지 않아도 아이는 자고 일어나면 혼자 놀잇감으로 가서 조용히 자기만의 놀이를 했다.

심지어 키워주시는 이모님은 아이가 잘 울지도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애를 보고 있냐고 깜짝 놀란다고도 하셨다.

부모를 그리 귀찮게 하지도 않고, 혼자서 잘 놀았다. 정말 혼자서 잘 놀았다.

밥 먹을 때도 식탁에 앉혀 놓으면 알아서 자기 밥을 먹고 어른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앉아서 밥을 먹든 놀든 했다.

음식을 가리지도 않았고, 나물이든 고기든 주는 대로 잘 먹었다.

부모에게 요구가 많지 않았고, 따라서 부모를 많이 찾지도 않았다.

우리가 잘 몰라서 힘들게 재워서 그렇지 한 번 재우면 세상 잘 잤다.

어디 가서도 잘 잤고 잘 먹었고 잘 놀았다.

가르치지 않아도 때가 되니 기저귀를 떼고, 한글을 익혔다.


그런데 이건 남다르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는 부모를 잘 찾지 않았다. 이래도 되나 싶게 부모를 잘 찾지 않았다.

아이는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 등 가족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고, 자기가 할 일에 집중했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보호자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더 유심히 관찰했다.

기관에 다니면서 한 번씩 대환장 파티가 있었는데,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울고 불고 떼를 쓰는 시기가 한 번씩 찾아왔다. 갖은 수를 써도 안되어서 보통은 정말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엄마에게서 분리해서 들고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호명반응은 있었으나 부모나 양육자가 이야기할 때 잘 보지 않았다.

묻는 말에 잘 대답하지 않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잘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남자아이라서 무심하구나, 관심이 없구나 여기고 넘어갔었지만 최근에야 알았다. 남자아이라고 해서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그저 우리가 티브이 보고 늦잠을 잘 때 건드리지 않아서 기특하다 여겼지만 남다른 부분이었다는 것을. 한 번씩 우리 아이는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았나 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넘어갔는데 그렇게 조금씩 어긋나는 느낌들이 모두 어쩌면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에야 보이는 것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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