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누굴 가르치겠다고.
2024년 1월 3일. 신랑은 회식입니다.
오늘 저녁 큰 목소리를 냈다. 화를 냈다. 아니 흡사 분노의 표출이었다. 나도 놀랄 만큼 큰 목소리에 움츠러든 아이들의 눈을 마주했다. 그랬다. 나는 두려움이 가득 찬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순간 숨고 싶을 만큼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지만 이미 터진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도 않았다.
ADHD인 큰 아들은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는 내 눈치를 살피며 몸을 움츠렸고, 작은 딸은 겁에 질려 눈이 휘둥그렇게 되었다가 끝내는 엉엉 울면서 방으로 도망갔다. 사실 나도 내 목소리 크기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내는 일이 있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고함을 지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사실 그리 화가 날 상황도 아니었는데, 생각해 보면 소리 지를 일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나는 그저 평소처럼 저녁 상을 차리고 있었고 식사를 하러 오라는 나의 부름에 어떤 녀석도 '네!' 하며 오지 않았다. 몇 번을 불러야 느릿느릿 나온 두 녀석은, 큰 아이는 상을 꾸미겠다며 수저 밑에 핸드타월을 놓고 수저를 올리느라 상을 휘젓고 있었고 둘째 아이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징징거렸다. 급기야 큰 아이는 액자를 상에 올려놓겠다며 부산했고, 몇 번의 주의 끝에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 아이가 ADHD이기 때문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ADHD라 산만하다, 부산하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등등 부정적인 수식어로 아이를 장식하고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부산하고 지시를 한 번에 듣지 않는 아이인 것을 알고 있다면 좋은 말로 두 번 세 번 지시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저 아이는 상을 꾸며 보고 싶은 단순한 마음인 것을 알고 있다면 나는 왜 그렇게 깊은 분노가 터져 나왔을까. 사실은 신랑이 없었고 혼자 둘을 케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상을 차리고 차려 놓은 상에 앉아 아이들이 밥을 먹어야 내가 편하다. 내가 생각해 놓은 틀에 맞게 상황이 이뤄져야 하는데 자꾸 내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나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어른인 나도, 나는 내 마음 하나를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아이가 ADHD라고 아이를 그 틀 안에 가두고 내 마음대로 재단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큰 아이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두려움에 액자를 치우던 모습이 가슴에 사무친다. 오늘 내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싶다. 어쩌면 아이는 오늘 엄마의 그 호통에서 두려움을 자신의 무기력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나 아이에게 사과를 건넸지만 아이는 쉽게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마음이 여리고 큰 소리에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 아이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어른이면서 내가 누굴 가르친다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