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통해서 보는 내 모습이 (페니드정 복용 기록)
20250305 DAY52 오후 3시 50분 1알 복용
개학일을 무사히 넘겼지만 안심이 되지는 않는다. 혹시나 오늘이라도 돌변하면 어떻게 하나란 나의 불안과 달리 아이는 떨린다는 말도 없고 특별한 화장실 이슈도 없었다. 그저 아침에 졸리다고 일어나지 못해서 헤매는 것 말고는. 졸려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는 했지만 불안하거나 떨리는 문제는 아니었다. 오늘 할아버지 생신이라 아침에 영상통화를 했는데 할아버지가 운전 중이시라 말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더니, 아이는 할아버지 생신이니까 학교 안 가고 할아버지한테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또 아침에 눈이 너무 많이 와 학교 가는 길이 난리도 아니었고, 횡단보도 앞에서 나란히 줄을 서서 건너느라고 시간이 엄청 걸렸는데 아이는 학교 가기 싫었는데 잘 됐다라며 좋아했다. 떨리고 불안해서 학교에 못 갈 것 같은 건 아니지만 학교에 가기 싫은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래도 학교 문을 씩씩하게 통과해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는 내 마음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서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데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학생이 많아져서 어수선하고 질서가 자리 잡히지 않아서 학부모와 학생, 선생님, 학원 차량까지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 확인을 해보니 내가 시간을 착각하고 너무 빨리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많아 아이가 수업 중인 체육관에 가서 몰래 아이를 훔쳐보니 아이는 혼자 배드민턴에 빠져 정신없이 치고 있었다. 아이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안도가 되면서도 혼자서만 배드민턴에 빠져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하는 것에만 빠져있는 모습 말이다.)
어쩌면 아이의 특성과 기질이 전학을 무난하게 넘길지도 모르겠다.
너무 일찍 온 탓에 한참을 기다리면서 다른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게 곁에 있는 친구가 바로 00친구라며, 우리 아파트 몇 동에 사는 친구라며 소개하기 바쁘고 곁에 있던 엄마들도 서로 얼굴을 트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 아이들 뿐 아니라 남자아이들도 우리 반 친구라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에게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아, 나는 아들의 친구 엄마를 사귈 수 없겠구나란 필연적인 직감이 든다..
집에 온 아이는 오늘도 재미있었다고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랑 놀았다고도 했다. 이름을 아는 친구가 있냐고 물으니 '아니'라는 당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지는 않다. 유심히 지켜보고 살펴본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애착이 깊지는 않다. 그래서 같이 놀면 노는 거고, 아니면 말고?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꼭 이 친구랑 놀고 싶고, 같은 반을 하고 싶고 이런 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학이 쉬웠을 수도 있다. 아이는 환경의 변화가 낯설고 두려운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적응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아이들끼리 붙어 놀고 친해지고 하는 분위기가 아니고 부모가 아이들을 붙여 주고 부모가 모임을 만들고 하는데 이런 무리에 끼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억지로 만들 수도 없고(사실 나도 그런 성격은 아니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좀 친하면 엄마들끼리 안면을 익히고 하면서 넓히는 것인데 역시나 어렵겠다.
누구를 닮았겠나. 부모를 닮았겠지.
내가 그런 사람이기는 했다. 어렸을 때 그래도 좀 똘똘하고 똑부러지는 아이라 선생님도 예뻐하시고 친구들도 곁에 따르고 해서 친구랑 놀면 놀고 아니면 말고, 이런 성격? 그래서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친구가 있지도 않았다. 중학교에 가서 여자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니 거기서 어려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성격이 막 그게 잘 되지도 않았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좀 더 그런 편이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학여행이나 소풍에서 누구랑 앉고 누구랑 같이 다니고 이런 문제들이 무리가 없어서 어떤 무리엔가 끼어야 한다는 것(끼워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 좀 싫었다. 그렇다고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혼자 다닐 배포는 안 되고... 사실 그때는 그런 상황이 엄청 괴롭거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돌아보면 나는 그때마다 집에서 위안을 받고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이런저런 사소한 일까지 말하면서, 말을 하고 나면 좀 나아지고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나 참 외로웠겠다, 견뎌냈구나 싶어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도 내 성격이 잘 바뀌지 않는데 아이라고 타고난 모습이 쉽게 바뀔 리도 없고 아이는 지금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 다만 나는 아이도 어디선가 위안을 얻고 힘을 얻어서 불편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견디고 이겨낼 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말이 많은 아이도 아니고 자기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도 아니라 아이는 늘 알게 모르게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것들이 있을 테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 그 칼날이 아이를 향할까 염려스럽다.
단단한 마음을 가진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