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의사가 말한 2년의 여유는 어쩌면 아이에게 주는 시간이 아니라 부모에게 주는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약에 대해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부모에게 아이는 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부모 자신을 설득할 시간 말이다.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약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있다. '차라리 약을 먹는 게....'로 시작하는 생각들이 자꾸만 많아지고 있다.
약을 합리화하는 순간들.
1.
아들은 마치 엄마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 엄마가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같은 지시를 한 두 번 해서는 되지 않는다. "밥 먹어. 밥 먹어라. 밥 먹으러 와야지. 엄마가 지금 뭐라고 했어? 밥 먹으러 와라." 같은 지시를 이렇게나 여러 번 이야기하다가 순간 버럭하게 된다. 그리곤 한계치에 다다른 나의 인내를 마주한다.
안다. 아이에게 다가가서 눈을 맞추고 부드럽게 말해라. 몇 번이고 부드럽게 말해라. 그러나 엄마도 사람이라서, 매번 매 순간 한결같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는 아이가 너무 안쓰럽기도 하고 아이가 원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하나하나 차분히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관성이라고 했던가. 점점 이 상황들이 받아들여지고 아이는 쉽게 바뀌지 않고 나는 점점 답답해지면서 점점 더 버럭 하는 횟수나 강도는 심해지고 있다. 아들을 기다려 주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속이 터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럴 거면 차라리....'를 마주하게 된다.
카페에서 아이에게 약을 먹일 결심을 하는 이유로 '엄마가 미칠 것 같아서'라는 사례가 종종 아니, 많이 보인다. 또 엄마가 우울증이 왔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내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은 답답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보다는 약을 먹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업을 것 같다.
2.
ADHD 아이들의 중요한 문제 중 한 가지가 아동이 받는 부정적인 피드백이다. 아이가 부정적 피드백을 계속 받게 되면 아이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것은 다시 아동을 더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감이 낮아지는 등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아들은 조용한 ADHD이기 때문인지 행동이 과격하지 않고 충동성이 높지 않아서 기관에서 지적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확실히 커가면서 엄마의 눈에는 산만함이 눈에 띄게 늘어난 면이 있다. 아직 기관에서 피드백을 받은 일은 없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소아과 진료를 보기 위해서 병원에 갔는데 진료 의자에 앉아서 청진을 하는 중에 아이가 자꾸 몸을 움직였다. 내가 주의를 주었지만 청진기의 촉감 때문인지 앉은 자세의 불편함 때문인지 순전히 산만함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는 얌전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OO아, 꼼지락 거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봐." 하셨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 아이가 겪을 부정적 피드백의 시작인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나도 함께 움츠러들었다.
3.
아이가 진단을 받은 후 꾸준하게 한 일 중에 하나가 매일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눈과 손의 협응이 어려워 쓰기를 힘들어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시작한 일이었다. 워낙 집에서 자기 이야기를 종알종알하지도 않아서 일기 쓰기 전에 하루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일기를 쓰도록 하고 있다.
벌써 6개월을 해오고 있고 이미 쓴 일기장이 3-4권이 되었는데 아이의 글씨체는 오히려 삐뚤빼뚤해졌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시간에는 정말 집중을 못하고 책에서 본 산만한 아이의 모든 행동을 한다. 지우개 똥 만들기, 지우개에 구멍 뚫기, 괜히 연필 떨어뜨리고 줍기, 일기장 끝을 손으로 말기 등등. 최근에는 5-6줄 정도의 일기를 쓰는 데 한 시간씩 걸리고 있다. 아이도 너무 힘들어서 죽을 맛이겠지만 그 옆에 붙어 앉아 있는 부모도 미칠 노릇인 게 오빠에게 치이는 둘째는 거의 방치의 시간이다.
정말 아이가 약을 먹으면 엄마 말을 좀 더 잘 듣고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뭉클뭉클 올라온다.
4.
ADHD 아이들은 억울함이 많다고 했던가. 그런데 아들들도 억울함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ADHD인 아들의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의 급발진이 잦아졌다.
자동차에서 가수 태연의 노래를 마음에 들어 하기에 태연 노래가 좋냐고 물었더니 중간에 다른 (태연의)다른 노래를 끼워 넣지 말라고 한다. 신랑이 태연 노래 더 찾아줄까? 하고 물으니, "아니~!!! 내가~!!!!" 하면서 눈물이다.
앉아서 학습지를 하다가 엄마가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다시 해보자고 하니 또 "아니~!!! 이거~!!" 하면서 눈물이다.
이게 이렇게 화가 날 일인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답답하다는 듯이 화를 내고, 말로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에도 오히려 눈물이 는다.
본인의 마음이나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억울함이 쌓이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의 생각이 몰두해서 다른 사람의 설명을 잘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부모는 몇 번이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것이 교우 관계에서도 그렇다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것은 처음에 스스로에게 한 약속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점점 자신이 없다. 오히려 아이에게 약을 먹이지 않는 것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이를 위해서 읽고 있는 책에서도 약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하고 있고, 자주 찾는 카페에서 엄마들의 글도 하나같이 결국은 약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할 수 없는 일인가라는 두려움에 아이의 여러 가지 행동들이 더해질수록 아는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답을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