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다 앞자리가 비었나 누가 앉아있나 바라본다
빼꼼히 바라본 자리가 비었으면 소소한 행복을, 누가 앉아 있으면 약간의 아쉬움을 달래며 버스에 오른다
나는 버스 맨 앞자리가 좋다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며
생각이 많고 복잡한 날은 하나씩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 좋고 그렇지 않은 날은 멍하니 있는 시간이 좋다
때로는 생각에 잠겨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가다 보면 정류장에 멈춘 버스
창문을 넘어 정류장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
혼자 기다리며 통화하는 사람
함께 기다리며 재잘재잘 대화하는 사람
옆에 캐리어를 놓고 기다리는 사람까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다 보면 궁금하다
-통화하는 사람은 누구와 무슨 통화를 하길래 화나 보일까? 아, 화난 게 아니라 억울하거나 어쩌면
슬픈 걸 수도 있겠다
-버스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친구일까 아니면 가족일까
-옆에 캐리어를 놓고 있는 사람은 어딘가로 떠나는 길일까? 아, 어딘가로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겠다
궁금한 게 생기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대로 생각한다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는 사람은 상대와 생긴 오해를 풀어가는 중이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은 닮았으니깐 친구가 아닌 가족이지 않을까 그리고 옆에 캐리어를 놓고 있는 사람은 대학생인 것 같은데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 않을까
혼자서 생각한들 통화하는 사람이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하고 어떤 감정일지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저 사람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없지만 궁금한 걸 해소하기
위해 생각하다 보면 내려야 할 곳에 버스가 멈추고
버스에서 내린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걸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을 통해 기억에 묻혔던 나를 꺼내본다
친구와 생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막막했고, 이 오해는 왜 생겼을까 화나고 슬프기도 했던 날과
재잘재잘 거리며 누군가와 버스를 기다리던 날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집으로 가는 길 어서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과 곧 그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날의 나를 꺼내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내가 버스 맨 앞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 앉아 내려야 하는 정류장에 가는 동안
정류장에 도착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생각에 잠겨 느껴지는 평온함이 좋기 때문에
나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는 걸 좋아한다
어떤 생각을 하다 보면 잊힌 기억이 떠오른다
잊었던 기억을 떠오르다 보면 다른 기억들도 뒤죽박죽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러면 나는 언제인지도 모를 오래전의 기억부터 최근의 기억까지 튀어나오는 기억을 마구 꺼내 놓는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하다 보니깐 버스 맨 앞 지리에 앉아가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고
버스 앞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기던 순간의 기억을 꺼냈더니 언제인지 모르지만
추운 날이 지나고 살랑살랑 따스한 봄바람이 불던 날 버스에서 어르신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르신을 본 그날은 버스 앞자리에 누가 앉아 있어 아쉬움을 달래며 중간 자리에 앉아 가고 있었다
생각이 많거나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멍하니 앉아 창밖을 보며 가는 중에 정류장에 멈춘 버스에 어르신 한 분이 다 오르지 않은 채 밖을 보며 외쳤다
“현숙아 여다 여!! 어여 온나”
어르신의 모습이 너무 애틋해 보여서
두 분의 관계가 어떻게 되길래 저렇게 애타게 부를까 궁금했을 때
묵묵히 기다리던 기사님께서 투박하게 말씀하셨다
“거 위험합니데이 올라오이소”
기사님의 말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앞뒤로 팔을 저으며 더 크고 더 다급하게 외치는 어르신을 보며
나의 궁금증이 더 커져갔을 때 현숙 어르신이 다른 버스를 탔다는 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어르신은 버스에 올랐다
진짜 두 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친한 언니와 동생 사이일까 아니면 친자매일까 그러면 누가 언니이고 누가 동생일까
현숙 어르신이 동생일까 아, 할머니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일 수도 있겠다
혼자 생각해 봐야 알 수 없지만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을 때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현숙 어르신을 찾던
어르신과 일행분도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기에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그 덕에 어르신들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자빠질라 단디 잡아라"
"카드 찍었나 퍼뜩 찍어라"
"현숙이는 단디 내렸을라나“
버스에서 내리는 중에 넘어지지는 않을까
혹시 카드를 찍지 않고 내리지는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어르신과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순간까지 현숙 어르신을 애타게 찾는 어르신의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다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날 버스에서 어르신을 본 날의 기억을 꺼냈더니 뒤죽박죽 다른 기억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이 기억은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기억인데,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다가 할머니가 되면
즐거운 건 하나도 없고 공허한 날만 반복될 것 같아 나이가 들고 또 드는 게 두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중학생이었던 당시에는 두려움을 느낄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원인을 찾아보려고 생각했더니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고 몇 년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이 기억은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날인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고
그때까지 우는 어른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날 많은 어른들이 내 눈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아이처럼 펑펑
소리 내어 엉엉
목놓아 우는 어른들의 모습은 너무 낯설었다
뒤늦게 원인을 찾으려고 했을 때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 걸 보면
그 당시 내가 느낀 낯섦은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충격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이가 들고 또 들면 주변 사람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나 보다는 인식이 심어진 게 아닐까
내가 느꼈던 두려움의 원인을 뒤늦게 찾았던 날
나는 아직도 나이가 들고 또 들어 할머니가 되는 게 두려울까
할머니가 되면 삶은 지루하고 공허하기만 할까
의문이 생겨 곰곰이 생각했더니
내게 있어 나이가 드는 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일이 되었으며
할머니가 되었다고 해서 삶이 재미없고 공허함만 가득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죽박죽 튀어나오는 기억을 꺼내 생각했고
그 생각들을 이 공간에 기록하기 위해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동안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는 나를 상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그랬더니 버스에서 만났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추운 날이 지나고 따스한 기운이 스멀스멀 나올 때 삼삼오오 나들이를 나와서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챙기는 어르신들처럼 나도 저분들의 나이가 될 때 누군가를 애틋하게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지금보다 나이가 들고 또 든다면 그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삼삼오오 속 친구들은 누가 될까
나는 삼삼오오 어디로 나들이를 떠나고 있을까
나는 그때까지 멈추지 않고 끄적끄적 글을 쓰고 있을까
이 모든 건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그날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거니깐 먼 훗날의 생각은 잠시 접어놓고
지금 이 순간 들었던 생각과 느꼈던 감정을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