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바라본 부모님

타지에서의 각자도생

by ㅇㅈㅇ

미국 이민 생활은 철저한 각자도생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을 시작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해내는 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의 길이다. 별다른 사건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조차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절, 부모님 또한 매일같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계셨을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덕분에 일찍 철이 든 듯했지만, 부모님의 아픔까지 온전히 헤아리기엔 아직 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학업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영어를 익혀 남의 도움 없이 우리 가족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우리 가족은 간단한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사소한 일도 결코 사소하지 않게 느껴졌다. 도움을 받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현실이 서럽고 분노로 차오르기도 했다. 누나 친구의 도움을 받을 때조차 미안한 마음에 손에 얼마라도 쥐어 주어야 했다. 차라리 돈을 지불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덜 속상한 일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은행이나 학교에서 행정적인 일을 처리할 때면 부모님은 아는 분께 부탁해야 했다. 한 번 도움을 받을 때마다 최소 100불을 드려야 했고, 때로는 그들의 가족까지 챙겨야 했다. 심지어 그들이 부모나 자녀까지 대동하고 나오면 식사 대접도 부담이 되었다. 친해질수록 더 불편해지는 관계. 하지만 아쉬운 사람이 먼저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민 온 부모들은 생계를 꾸리느라 영어를 배울 여유조차 없다. 학교에 등록해도 강의를 듣고 곧바로 일터로 나가야 하니, 학업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어학원에는 또래 친구도 없었다. 대부분이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이었고, 부모님은 밤마다 숙제에 매달려야 했다.


아버지는 결국 영어 공부를 포기하셨다. "지금 와서 배운들 무슨 소용이냐"며 체념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어학원을 다니며 한동안 워킹맘으로 생활하셨지만, 한계를 느끼셨는지 종종 우리에게 "너희는 언제쯤 영어를 능숙하게 하게 될까?"라고 물으셨다. 그 질문이 나를 더욱 학업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우리 부모님. 타지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사람을 사귀기도 쉽지 않으며, 생활비는 한국과 미국 양쪽으로 줄줄 새어나가는 현실 속에서 오로지 우리 졸업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셨다. 그 시간 속에 숨겨진 수많은 사연과 응어리가 얼마나 많을까. 언젠가 부모님도 그 한을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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